묵상노트

1359주일 | 내가 빌립보교회 성도일 때 일어나는 일들(행16.16-40[2])

1359주일 | 16.16-40[2]

내가 빌립보교회 성도일 때 일어나는 일들

 

 

세상의 도전(16-24)

 

[1] 도전1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비웃고 조롱하며 선동한다(17).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17)

 

[2] 도전2 무엇보다 이익이냐가 우선이지 손해가 되면 가만 있지 않겠다(19).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19)

 

[3] 도전3 로마를 어지럽히는 위험한 자들이다(20-21).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20-21)

 

[4] 도전4 감옥에 가두어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게 한다(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23)

 

하지만 이런 일들은 아무에게나 일어나지 않는다.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 참된 교회로 세상 앞에 등대처럼 서 있을 때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렇다면 이제 막 세워지고 있는 빌립보교회가 어떤 교회인가를 알게 된다. 주님은 빌립보교회를 통해 우리가 빌립보교회와 같은 성도일 때 우리에게도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 하신다.

 

 

교회의 응답(25-34)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그 때’)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 -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 -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29 간수 -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31 바울 -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그 밤 그 시각에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1] 응답1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한다(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25)

 

놀라운 것은 바울과 실라가 세상의 거짓 프레임에 넘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은 이미 빌립보 광장(장터; 19)으로 끌려가서, 빌립보 법정에서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22-23)어진채, 결국 죄수 아닌 죄수의 몸과 신분으로 수감중인 상태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바울은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37)는 선언에서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이 옭아맨 거짓되고 악한 프레임에 저들처럼 대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비난하고, 선동하고, 고발하고, 급기야 감옥에 넣어도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겼다. 세상과 같은 방식으로 언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어떻게 했는가: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25)

생각해 보면, 오늘 구금되어 구치소에서 빌립보 감옥으로 들어왔을까? 빌립보서 1장을 읽어보면 빌립보 감옥에서의 수감이 1-2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가, 어떤 사람이 16-23절의 상황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상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을까.

다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9)라고 바다 건너에서 들려오는 환상과 연결된다. 이 꿈이 바울의 갈 길을 정해 주었고, 그렇게 온 빌립보에서 만난 일들이다. 무슨 말인가. 이곳 빌립보에서 하나님이 하시려는 복음 전도는 세상이 좁혀오는 프레임에 묶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슨 기도였을까. 저들의 찬양은 하나님을 향한 어떤 찬송이었을까. 하지만 극심한 고통과 공포와 아픔과 절망의 감옥에서도, 무엇보다 37절에 의하면 이처럼 감옥에 들어오지 않아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과 실라는, 그렇다면 감옥에 들어오는 것을 왜 막아서지 않았을까.

그렇다. 이들은 이 일련의 모든 일들을 통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음을 알았고, 믿었기 때문이다. , 그러면 다시... 그렇다면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서 무엇을 기도하고 찬송했을까. 이 신비스런 일의 놀라운 실마리는 바로 29-30절에 등장하는 간수의 언행이다: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29-30)

30절이 중요한 고백일까. 놀랍게도 여러 날 동안 한밤중에 빌립보 감옥을 울리는 ㄱ기도와 찬양은 빌립보와 빌립보 사람들을 향한 바울과 실라의 구원, 그러니까 죄 용서와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기를 바라는 복음의 외침이자 간구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음의 불모지 빌립보에서 빌립보교도소 소장이 어떻게 30절의 고백을 토해 낼 수 있었겠는가. 이것이 빌립보 감옥에서 기도와 찬송으로 세상의 거짓되고 악한 프레임을 무력하게 하는 복음의 능력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 화명동 장터(19)와 광장에는 지금도 빌립보 프레임과 동일한 것들이 죄의 사슬이 되어 견고한 진처럼 우리를 위협하고 흔들어 댄다. 어디 화명동 뿐인가. 이 거짓되고 사악한 세상 프레임은 우리 직장에도, 우리 가정에서, 우리 교회에도, 무엇보다 우리 마음과 심령과 생각과 입 안에도 견고한 사탄의 진이 되어 우리를 유혹하고 무력하게 하고, 그리하여 세상과 짝하여 살아가도록 만든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세상과 유사한 프레임일까. 아니다. 32절이라는 기도와 찬송이 답이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 기도가 답이다. 이 찬송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답이다. 세상식으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식으로만 된다.

바울은 세상의 그 어떤 유혹과 도전에도 세상방정식과 비슷한 프레임을 사용하지 않았다. 흔들리지 않았다.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구원을 기도하지도 않았고, 이런 유사품들을 찬양하지도 않았다. 25절 안에 오직 32절만을 바라보고 구하고 찬양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이것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그 은혜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이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3.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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