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251새벽 | 4인4색: 그러나 25장 23절이다(창27.41-28.9).

251새벽 | 창27.41-28.9
•4인4색: 그러나 25장 23절이다.


[1] 에서는 청개구리다. 정작 귀하게 바라보아야 할 때는 복과 장자권을 가볍게 여기더니, 결국에는 미움과 증오의 대상을 동생 야곱에게 조준한다(41):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뿐만 아니라 가나안 헷 사람의 딸들에게서 아내를 얻는다(26.34-35; 27:46), 물론 후에 본처들 외에 다시 아내를 맞지만 여전히 부모가 결혼한 방식이 아닌 자신이 결정권을 가진 결혼을 한다(28:8-9). 이처럼 그는 하나님의 축복과 다스림 밖으로 점차 밀려난다.
[2] 이삭은 이미 수태고지(25.22-23)를 통해 하나님께서 큰 자 에서가 작은 자 야곱을 섬기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섭리, 예정, 작정, 뜻)를 알게 된다. 하지만 그는 끝내 에서(에서의 모양을 한 야곱)를 축복하고야 만다. 그리고 형의 동생 죽이기 계획을 안 후에 다시 야곱을 축복한다(28.1-4). 참으로 어리석은 부모의 편애요 일그러진 사랑이다.
[3] 리브가 역시 저주를 자처하면서까지 에서에게로 가고자 하는 아버지의 축복(장자권)을 야곱과 결탁하여 마침내 동생 야곱에게로 옮겨오고야 만다. 그리고 형의 칼을 피해 오라버니 라반에게 피신하도록 퇴로를 열어준다. 한편 이 비밀리에 행하는 미션은 자신과 아버지 이삭이 그러했듯이 배우자(며느리)는 가나안 여인이 아닌 오라버니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게 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4] 야곱은 부모의 명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양세다. 그는 붉은 죽으로 장자권을, 형의 형체와 모양으로 축복권을 받아낼 때는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그 모사에 참여한다. 이를 위해 그는 정면승부가 아닌 속임수 전략을 쓴다.
이처럼 4인은 모두 앞서 하나님께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24.23b)는 수태고지를 비껴간다. 참으로 묘한 분위기다. 천하의 이삭과 리브가 아닌가. 그래서 더 놀랍다. 자신들의 생각대로 언행함으로서 훗날 자식들의 대(代)에서까지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함에도 말이다. 감히 신명(神名)을 거역하면서까지 이러고들 있으니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이삭은 매우 ‘감각’적인 사람이었다. 연로한 이삭은 눈이 어두워(시각, 27.1) 속아 넘어가기에 쉬웠고, 동시에 촉감으로도(촉각, 27.21,23), 음성으로도(청각, 27.22,24), 후각으로도(27.27) 속았다. 또한 별미를 즐겼다(미각, 27.4). 한편 이삭이 속이려 했던 행위는(26장) 그 아들 야곱이 나이든 이삭을 속이는 것으로 반복된다(27장). 또한 야곱이 아버지와 형을 속이는 행위는 그가 외삼촌 라반에게 속는 것으로 다시 반복되면서(29장), 그야말로 속고 속이는 쟁탈전이라는 스토리의 한 축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발전해 간다.
이삭은 장자가 아닌 야곱에게 변경할 수 없는 구두(口頭) 축복을 하는 거룩한 실수를 범한다. 한편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속이는데 염소 가죽을 사용하였고(27.16), 후에 그의 아들들이 야곱을 속이는데 염소 피를 사용했다는 점은 일치 치고는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37.31). 이것은 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를 총애했던 것이 야곱이 그의 아들 요셉을 총애하는 것으로 반복되는 것과 쌍(대칭 구조)을 이룬다. 이처럼 창세기는 하나의 문학으로서도 탁월한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지금 어떤 해법(해결책, 정답, 해답)을 들고 삶의 여정을 걷는 중인가.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 같은 방향인가. 이는 성경이 말씀하는 것과 동일한 시각이고 색깔인가. 하나님의 뜻 이루자고 부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고 바라는 식으로 자식과 그 자식에게 임하는 복이어야 한다는 식이라면 곤란하다. 나 역시 얼마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점이 4인4색 이야기 앞에서 머뭇거리게 한다.
어떤 자식이 다른 자식보다 잘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얘기하기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도 부모의 삶을 살아가기에 익히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어쩌면 그래서 하나님의 복이 야곱에게니까 아버지 이삭이 에서에게 아비로서나마 복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이삭의 가정은 과녁이 빗나간 화살처럼 어수선하다. 이처럼 헝클어진 하나님의 예고하심(25.23b)은 어떻게 될 것인가. 창세기는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마저 거역하며 인간의 뜻을 펼치고자 언행하며 달려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누구이신가를 보여준다. 그래, 하나님을 따라가 보자. 그게 희망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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