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35새벽 | 그리스도의 우월성(히7.20-28)

35새벽 | 히7.20-28
•그리스도의 우월성

 
•레위(아론) → 멜기세덱 → 예수님으로 이어지는 제사장직에 대한 말씀이다. 먼저, 멜기세덱(예수님)이 아론보다 우월한 이유는 하나님의 맹세 때문이다(15-22). 율법에 기초를 둔 맹세 없이 된 제사장직은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18)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16b,21a) 대제사장이 되셨다: “주께서 맹세하시고 … 네가 영원히 대제사장이라 하셨도다.”(21b) 이는 율법에 근거한 제사장직으로는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이 아론보다 우월한 이유는 제사장은 계속 바뀌지만(28a)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 계시므로 그분의 제사장직도 영원”(24, 현대인의성경)하다. 유한한 인간 제사장에 비하면 예수님은 지금도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제사장이시다(28b). 이처럼 예수님의 영원성 때문에 아론보다 우월하시다(23-25).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제사장직이 우월한 가장 크고 분명한 이유는 예수님의 속성 때문이다(26-28). 감히 율법의 지배를 받는 인간 제사장과 비교할 수 없는 성자(聖子)만의 특징들이야말로 예수님이 완전하신 제사장이시라는 선언의 최고봉이다. 예수님은 영원하시며(영원성, 24), 거룩하시며(거룩성), 악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며(무죄성, 4:15), 더러움이 없으시며(도덕성),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이시며(영광성), 자신의 속죄를 위해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이 단번에 자신을 드리셨다(단회성, 27).

예수님은 완전한, 동시에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당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심으로써 이를 확증하셨다(27). 어떤 제사장도 자기 몸을 드린 자는 없다. 오직 희생의 제물을 드렸을 뿐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친히, 기꺼이, 스스로 자신의 몸을 온 인류의 죄를 위해 내 놓으셨다.
아론의 가문의 반차를 좇아 난 대제사장은 인간의 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따라서 인간 제사장은 결코 중보자(中保者)가 될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中保)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2.5)
유대인들은 교묘하고 지능적이게도 제사(율법)에로의 복귀를 통해 인간의 죄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 이미 변경되어 버린 ‘옛 계명’(12,18)을 다시 들고 나온 것은 어떻게 해서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인하려는 자들의 술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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