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주일 | 창39.1-6,19-23
•형통주의보
A [성경]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3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9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20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 B/X [실상] 노예, 종, 가정총무, 감옥, 죄수
→ C [고백] 9절
•요셉은 그의 오늘이 실상(B/X)임에도 그의 고백(C, 9)은 빛난다. 분명 불통신호등인 것 같은데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으로서 하나님 쪽으로 걷는다. 그런 요셉을 가리켜 성경(A)은 하나님께서 함께하는 사람이라 말한다(2,3,21,23). 동시에 ‘형통’(2,3,23)이라는 훈장까지 하사한다.
이게 뭘 말하려는 것일까? 감옥과 형통은 무슨 관계일까? 어렵다. 하지만 지금 우리 또한 유무형의 무수한 감옥을 통과했고 또 통과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문제를 이해하기는 참 쉽다. 내가 요셉과 비슷한 감옥(B/X) 속에 있을 수 있다. 그때 하나님께서 ‘너는 형통이다’라고 하신다면 그게 뭘까?
다 잃었어도, 그래서 지금 내가 감옥(X)에 있어도 거기에서도 하나님만 있다면, 실패한 것처럼 보이고 인생 헛 산 게 아닐까 싶어 내가 만들어버린 그 감옥을 다시금 하나님을 노래하고, 그분의 임재와 살아계심 앞에 무릎 꿇을 수 있다면 그는 비록 감옥에 살아도 ‘형통한 자’다.
감옥마져도 형통이고, 감옥마져도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으로 산다. 하나님은 요셉을 간증자로 세우셔서 이 아침에 우리에게도 말을 걸어 오신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형통하냐?
*사랑하는 딸아, 너도 형통하냐?
*너 말이다, 남편과 형통하냐? 아들과는 어때 형통이냐? 시댁과는 어떠냐?
*야, 이젠 돈과는 좀 형통하게 사냐?
*혹시 너는 지금도 성공과 승리와 잘 되는 것만을 형통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냐?
*너, 지금 네가 통과하고 있는 감옥(X)에서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줄 수 없겠냐?
*[예배설교] -> 주일설교나 유튜브(김충만 목사, 양무리교회 검색)로 가시면 설교를 동영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