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새벽 | 막2.13-28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 역풍 앞에 서다(2).
1장(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은 2장(유대 종교지도자들)에서 즉각적으로 제동이 걸린다.
역풍❶(1-12): 신성모독
역풍❷(13-17):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
역풍❸(18-22): 금식
역풍❹(23-28): 안식일 노동
→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3.6)
역풍❷(13-17) -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다?
주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서 함께 식사하신다(13-15). 이번에도 바리새인들은 왜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느냐며 분노한다(16). 자신들은 세리처럼 더럽고 추하게 살지 않으며, 또한 죄인들로 낙인될 만한 어떤 언행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의인이라는 자기 확신(‘자기 의’)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다 병든 자이며, 그들을 치료할 자는 오직 예수님 자신이라 하신다. 주님의 눈에는 세리나 바리새인이나 다 죄인이다. 그렇다면 죄인(바리새인)이 의인(예수 그리스도)을 죄인이라 정죄하면서까지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하는 것 아닌가. 역풍 치고는 참 민망하다.
역풍❸(18-22) - 금식
이번에는 예수님을 금식 한번 하지 않는 경건하지 못한 사람이라 정죄한다. 문제는 나는 하는데 너는 왜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결국 금식을 한다는 것을 무엇으로 쓰고 있냐면 하지 않는 사람 때려잡는 방망이다.
이처럼 “나는 금식한다. 나는 기도한다. 나는 봉사한다. 나는 헌신한다. 나는 ○○한다.”는 배타적 독선주의라는 자기 중심주의에 빠져 주님 없이 살아갈 수 있다. 신앙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비난하고, 사사건건(事事件件) 시비하며 사는 셈이다. 금식의 본질은 온대간대 없고, 금식이라는 자기 의(義)만을 내세우고 있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일은 요원할 뿐이다.
역풍❹(23-28) - 안식일
안식일 계명은 이미 구약에서 명문화된 말씀이다(출20.8-11, 31.12-17). 하지만 지금 바리새인들은 ‘하지 말라’를 어기고서 뭔가 ‘일’을 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다(24). 아마도 유대 전통과 전승에 따른 39 가지의 금지행위를 들고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구약에는 구체적인 금지 조항은 없다. 단지 음식 조리를 위해 불을 지피는 것(출35.3), 땔감을 모으는 것(렘17.21- ), 상거래(느10.31, 13.15,19) 정도를 금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바리새인들이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은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에서 밀 이삭을 자르는 것- 구약 율법에 구체적으로 금지된 것들은 아니다. 이를 다윗의 예를 들어 바른 이해를 구하신(2.25-26, 삼상21.1-6) 그리고 이어서 안식일에 대한 매우 놀라운 말씀을 하신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27-28)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안식일에 사람을 억지로 끼워 맞춤으로써 사람을 수단으로 취급해 버린다.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를 거역하고 방해하는 바리새인들의 바람 앞에 주님은 정면선언을 하신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17b) 그러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신다. 결국 이 천국 복음, 메시야 사역을 방해하고 거역하는 자가 누구인가. 바로 종교 지도자들, 바리새인들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373장 ‘고요한 바다로’ 2절 처럼이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은 이 역풍 중에도 전파된다. 회개와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있다. 사탄도, 바리새인들도, 율법도 이를 막을 수 없다. 회개와 복음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이루어지는 씨앗이라고 한다면 오늘도 이 일을 위해 주님을 바라보며 성도로 살아가는 것, 참으로 영광스럽고 복된 헌신이요 충성이다.
[설교듣기] ↲
200305_시작된 하나님의 나라, 역풍 앞에 서다2(먹2.13-28)..m4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