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281새벽 | 믿음, 부정을 넘어 정결한 하나님의 나라로!(막7.24-37)

281새벽 | 7.24-37

믿음, 부정을 넘어 정결한 하나님의 나라로!

 

수로보니게 여인(24-26)

여인의 인생이 변한 것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25b)부터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복음을 듣게 된 것이다(10.17). 그러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의 문제를 예수님께로 가지고 왔다. 복음은 예수님이 자기 딸의 귀신들림을 해결하신다는 것을 믿게 했다. 때문에 그 어떤 수모와 모욕 앞에서도 문제의 중심을 잃지 않았다(27-28).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리니”(25b), 이것은 내려놓음 곧 항복이자 전적 포기를 의미한다. 그녀는 그리스(헬라) 국적의 수로보니게 사람이다. 이 여인의 결정적인 약점, 즉 한계는 그녀가 이방인이었다는 점이다. 이방은 언제나 부정의 상징이다. 때문에 이들은 서로 상종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부정한 이방 여인은 모든 것을 뛰어 넘는다.

그런데 정작 기적은 자칭 정결하다는 바리새인들에게서가 아니라 부정하다는 이방 여인에게서 이루어진다. 이방인으로서 부정한 사람은 정결 앞으로 나아오고, 유대인으로서 자칭 정결하다는 자들은 부정한 사람은 -실상은 부정하나 계속해서 단지 정결을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계속해서 부정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뜻밖의 Q&A(27-30)

정결하다는 바리새인들은 여전히 기적과 상관이 없고, 부정하다는 이방 여인에게는 기적이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부정한 모습이지만 정결케 되기 위해 주님께 나아왔다는 점이다. 부정의 문제가 율법이나 전통이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이 깨끗하게 하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으로 주님 앞으로 나아온 것이다. 비록 그녀는 부정하다는 정죄를 받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런 여인에게 예수님은 전혀 예상을 빗나간 뜻밖의 말씀을 하신다(27). 이야기는 여기서 급반전되며 요동친다. 여인은 주님을 찾아 그 발 앞에 엎드렸고, 그리고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간구하였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을 종합해서 좀 정리해 보면 개 같은 사람과는 상종하기 싫다!”는 뜻의 말씀을 하신다. 그렇다면 이 뜻밖의 대답은 무엇을 의미할까.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예수님의 경멸에 가까운 치욕스런 말에도 불구하고 그래요, 나는 개입니다. 그러나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27)라는 말로 대답해 낸다. 이것은 또 무엇인가. 긴장과 의문은 같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 15장에서 풀린다. 그 가운데 이 여인의 대답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에서 드러난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15.28)

예수님은 이 여인의 대답을 들으시고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하신다. 여인의 대답을 믿음으로 보셨다. 이게 핵심이다. 여인에게는 너는 개야!’와 같은 것이 전달되었는데 그녀에게서 나온 것은 나는 믿나이다!’는 답이 고백되어졌다. 여인은 부스러기 같은 믿음을 주님께 드렸으나 주님은 가장 값진 축복으로 응답하신 셈이다. 주님은 대화의 핵심을 믿음으로 끌고 가신다. 그렇다면 왜 여기서 믿음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일까.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일까. 먼저, 믿음은 자기 생각을 포기하는 것이다. 내가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 성경과 반대되면 과감하게 내 것을 버리는 것이 믿음이다. 내 중심적 사고와 언행은 어린 유아 때나 통한다. 신앙이 성장하고 성숙해지고 자라면 내 방식대로 만을 고집하는 것을 버리는 게 맞다.

둘째,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듣는 것이다. 내 마음대로 이것이, 저것이 믿음일거야 하지 않는다. 내 욕심과 욕망과 기대를 위해 성경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셋째, 긍정적으로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다. 믿음은 긍정적인 시각이고 고백이고 바라봄이다. 어떤 순간에도 나는 실패했어, 이제 끝이야, 하나님은 없어, 분하고 원통하구나!” 그러지 않았다. 그 이유는 어떤 형편과 처지 속에서도 믿음의 주인이신 주님을 신뢰하는 것, 그것이 믿음이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이 붙들고 있던 율법은 이것은 부정하다!’는 가짜 부정감별사와 같은 선언 밖에 하지 못했다. 그러나 믿음은 이 여인을 새생명 가운데로 인도한다(29-30). 믿음은 살리는 능력과 힘이 있다. 율법은 생명을 가두어 놓지만 복음은 생명을 새롭게 숨쉬게 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도록 한다. 복음은 변화시키는 능력이자 생명이다. 복음은 마른 가지처럼 보이는 율법의 가지에 생명이라는 새순이 돋게 만든다.

주님은 여인을 이 살아있는 진리와 함께 삶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신다. 여인의 정결함은 바리새인들의 전통을 지키고 행하는 것으로부터 오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다. 율법이 하지 못한 그것을 주와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이루신다.

놀라운 것은 여인(어머니)의 믿음이 딸의 정결을 이룬다는 점이다. 이는 나의 믿음이 너의 정결을 이루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수로보니게 여인에게서 믿음과 정결과 은혜를 한 번 더 묵상해 본다. 내가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살아갈 때 가정과 가족과 일터는 물론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세워질까요. 주님이 역사하심으로 진정한 정결의 회복이 이루어지도록, 잃어버린 정결이 다시 회복되어지도록, 거기에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이 사용되었듯이 나의 믿음도 그렇게 쓰이도록 더 깊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한 날을 소망에 담아 주께 간구해 본다.

  

[설교듣기]  

200318_믿음, 부정을 넘어 정결한 하나님의 나라로!(막7.24-37).m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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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나 지금이나 자녀를 위한 부모의 기도는 간절함의 극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부모에게 기업으로 주신 우리 자녀들이 주의 말씀을 듣고 귀가 열리게 하시고, 복음전파의 귀한 입들이 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지금도 주님이 계신 곳에 치유와 회복과 변화의 역사가 일어남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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