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290주일 |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 누가?(출14.1-14)

290주일 | 14.1-14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 누가?

 

이스라엘 백성들(A): 인본주의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10)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10a)

이스라엘은 애굽에 펼쳐진 하나님의 능력을 보며 담대히’(8b) 나갔다. 그런데 마음을 돌려먹고 이스라엘을 향해 다시 공격을 시작해 오는 바로와 애굽의 군사들을 눈을 들어 본즉 심히 두려워하여”(10) 그만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문제를 여호와께 부르짖고”(10c),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으로 이어간다. 그러나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11-12)로 이어지는 기도 이후가 더 문제였다. 이들은 기도는 했지만 그 기도대로 믿는 믿음에서는 그만 미끄러지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왜 이처럼 언행이 불일치하는가?

 

[1] 분명히 보았는데도? 그럼 무엇을 보았다는 것인가.

  *10 재앙

  *유월절

  *모세 - 애굽에서의 1차전(원정게임) 완승

     → 그렇기 때문에 이번 2차전(홈게임)도 승리를 의심하지 않아도 되었다.

[2] 그런데 왜 결정적인 순간에 힘 한번 쓰지 못하고 그만 실패할까? 아래의 것들()이 그 사람의 신앙이자 믿음의 수준인 것처럼 생각한다: 일종의 영적 착시현상이다.

  ▪그가 아는 것 성경 지식

  ▪그가 말하는 것 신앙적 표현과 고백들

  ▪그가 습관처럼 하는 종교 행위 기도, 예배, 신앙적 모임에 참석

  ▪그가 행하는 것 헌금, 봉사(교사, 찬양대, 주방, 주차 등)

     → 이런 것들이 곧 그 사람의 신앙이고 믿음의 깊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보고([1]) + 알고([2]) 말하고 있는 것이 신앙인가.

무엇이 이처럼 홍해 앞에서 그만 휘청거리게 만드는가. 첫째, 믿음과 신앙은 말로 하는 구호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곧 언약에 대한 신뢰의 문제다. 둘째, 사건과 일어난 일, 그 속에서 이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곧 믿음이다. 무슨 말인가. 이를 우리는 모세에게서 배운다.

 

모 세(B): 신본주의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13a)

   “너희가 오늘 애굽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13b)

모세는 눈을 열어 하나님을 보았다. 그는 13절을 보았다. 왜 모세는 다를까. 모세는 생각한다. 그리고 알았다. 그리고 믿었다: 꺼냈다면 분명 목적이 있다. 애굽에서 애굽 하게 했는데 홍해 앞에서 다시 애굽의 군사에게 죽는다? 이것은 아니다. 아브라함에게 400년 전에 하신 언약(15)을 이루시겠다, 그것을 위해 이 백성을 약속의 그 땅 가나안으로 이끄시겠다 하셨다. 누가? 하나님이다.

보통 우리는 이렇다: <1단계> 내가 큰소리 치고([2]), 그래서 믿음이 쌔고 큰 사람처럼 행세하며 산다. 그래서 어떤 일이 터지면 자기 확신과 자기 믿음이라는 인본주의 신앙을 꺼내든다. 그리고 믿습니다, 일어날 찌어다, 물러갈 찌어다그런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2단계> 그래서, 어라! 내가 의심했나? 믿음이 작은 것인가. 그럼 더 기도하자. 그러면서 금식하고 철야하고 헌금도 막 내고 종교적 열심과 열정을 불태운다. 그리고서 다시 열려라 참깨!’ 그런다. 그런데 되는가. 아니다.

, 모세를 보라. 모세는 한결같이 13-14절을 선언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으로부터 온 것일까. 아브라함 언약(15) 애굽 약속의 땅 하나님의 통치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말씀하심, 곧 하나님의 계획을 믿었다. 모세가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역사를 만들어 하나님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다. 믿음은 ’(I)가 주어가 아니다. 믿음의 주어는 하나님이다.

다름 아니다: ‘하나님을 믿었다.’ 좀 허망한가요? 뭐 대단한 무엇인가가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죠. 그렇지 않다. 모세는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을 통해, 자신을 사용하셔서 뭔가를 이루실 그런 하나님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게 모세가 말하는 믿음이 아니다. 이런 것은 거짓 신이다. 그는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었다.

 

이스라엘은 문제에 봉착하자 자연스럽게 옛 성품(생각, 행동)이 그대로 나타났다. 홍해, 애굽 군사들인 문제(시련, 환란, 고난)를 만날 때 예수님은 간 곳 없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원망하며 살아가고 싶어하는, 그래서 다시 애굽타령이나 소리치는 못된 것만 남아서 나를 흔들리게 한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13-14)

하나님만이 희망이다. 출애굽을 했어도 이스라엘처럼 언행하는 것에는 소망이 없다. 모세처럼 보는, 모세처럼 하나님의 일하심을 읽어내고 신뢰하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이 희망이다. 누가 지금 진행형은 여호와의 구원을 볼까? 누가? 바로 모세처럼 보는 사람, 바로 당신이다.

   

*[예배설교] -> 주일설교나 유튜브(김충만 목사, 부산 양무리교회 검색)로 가시면 설교를 동영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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