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새벽 | 막12.18-34
성경을 알지 못하니 오해한 것 아니냐?
부활 논쟁(18-27)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까지 ‘부활 때’(23)에 라며, ‘혹시 부활이 있다면’이라는 가정(假定)까지 해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사역을 방해하는 일에 합류한다. 믿지 않으면서도 시비꺼리로는 진리를 입에 올리는 사람들, “부활이 없다.”고 확신하면서도 부활을 가정(假定)하여 그것으로 주님을 골탕먹이겠다는 사람들, 거짓된 전제 위에 사상누각(砂上樓閣) 같은 허울뿐인 가짜 복음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사람들, 차라리 완전히 다르면 구별이라도 되지만 그럴듯한 포장으로 가장한 사탄의 후예들이 사용하는 뿌리 깊은 죄의 부도수표들이다.
하지만 주님의 처방이 눈부시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24) 먼저,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26)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주님은 사두개인들에게 확인시키시기를 너희들이 그토록 신봉하는 [모세오경]을 보면 모세에게 하나님이 자신을 소개할 때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다가 아니라 지금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통해서 저들의 무지와 오해를 지적하신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은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 시집도 아니 가고 …”(25)를 말씀하심으로써 역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무지와 오해를 깨우치신다. 이렇듯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27). 진리를 알고 싶고, 깨닫고 싶고, 믿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지식과 논리를 통해 주님을 딜레마에 빠지게 만들고 싶어하는 못난 인생들의 행진곡은 이렇게 끝난다.
무엇이 사두개인들의 들을 귀를 이렇게도 철저하게 막아버렸을까. 성경을 이야기하고, 예수님께 답(答)을 구하고 있는 것 같고, 뭔가 종교적인 질문들을 토해 내는 것 같지만 실상은 거짓으로 가득차 있으니 말이다. 어떻게 하면 책(責)잡고 시험하여 주님의 사명과 사역을 발목 잡을까만 있다. 어떻게 인생을 살아도 이처럼 사는 자들이 있을까. 주님은 이런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사역을 하셨구나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인생들은 아직도 ‘질문’뿐이다. 그것도 진리에 대한 목마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시려는 주님을 어떻게 해서든 흔들어 보기 위함이라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대답이 없는 인생, 대답을 들어도 변화될 그 어떤 기미도 나타나지 않는 인생, 오히려 진리로 대답하신 주님을 죽이는 것으로 진리에 반응하는 인생, 짧은 시간을 살아가면서 이렇게는 살아서 되겠는가. 진리의 말씀을 들어도, 예수님으로부터 설교를 들어도 변화되지 않는 저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싶다.
부활 이후에 일곱 형제 중에 ‘형수(재수) 같은 아내’가 누구의 아내인가라는 아무 쓸모 없는 생각을 해 놓고서 저들은 아마 참으로 기발한 질문이라고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세상에는 이처럼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 종교를 통해 삶을 연명하는 자들이 생각 밖에 많다. 지금도 성경이 얼마나 허구이며 신화(神話)들로 가득차 있는 인간의 책인가라는 괴변으로 학자의 자리에 앉아있는 자들이 많은지 모른다. 주님을 알고 더 잘 믿기 위해서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예수님과 진리를 상대적인 교훈쯤으로 격하시켜서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정해 볼까를 사명감으로 생각하며 사는 자들은 모두가 新바리새인이거나 新사두개인이다.
예수님 시대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곳에는 어디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처럼 깐죽거리는 자들이 있다. 참으로 불행한 사람들이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났으면서도 정작 저들은 어디 하나 변화되지 않는다. 정말이지 “쇠(牛) 귀에 경 읽기”다.
저들처럼 기가 막힌 질문은 만들어낼 만큼 지혜와 지식은 없어도 저들이 잘못 가고 있는 것쯤은 알 수 있고, 결국 계속 저러다가는 그 끝이 지옥이라는 것이 보이는데 그렇게 지혜와 지식으로 철철 넘치는 자들이 그걸 모르고 있다니 뜻밖이다. 아무리 많은 지식과 지혜와 학식이 있은들 그게 무엇이란 말인가. 저들을 보면서 바울의 편지 한 구절을 더 묵상한다:
“서로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옛 삶을 청산했습니다.
그것은 맞지 않는 더러운 옷과 같아서,
여러분은 이미 그 옷을 벗어서 불 속에 던져 넣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새 옷을 입었습니다.
여러분의 새로운 생활방식은 창조주께서 하나하나 맞춤제작하셔서
손수 꼬리표를 달아 놓으신 것입니다.
이제 낡은 생활방식은 모두 쓸모없게 되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종교인과 비종교인,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
야만인과 천박한 사람, 종과 자유인 같은 단어들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제부터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규정되며,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골3.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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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30_성경을 알지 못하니 오해한 것 아니냐?(막12.18-34).m4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