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새벽 | 막12.35-44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삶이다.
누가 하나님의 나라의 진짜 백성들인가: 서기관들인가, 한 가난한 과부인가.
서기관들(38-40) vs 한 가난한 과부(41-44)
12장은 여전히 ‘서기관’(38-40) 식으로 사는 자들, 그리고 ‘부자’(41-44) 식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등장한다. 저들은 주님을 시비(是非)하여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메시야 사역을 딴지 걸려고 하는 흉악한 이리와 같은 자들이다. 그렇다면 서기관들(38-41) 같은 자들은 일단 아니다. 어떤 자인가요? 38-40절처럼이라면 이들에게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없다.
자, 그런데 이와 대조적으로 한 가난한 과부가 12장에 선다. 한 가나한 과부의 전적인 헌신에서 –과부의 온전한 헌신, 즉 생활비 전부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전부이며 보호자시다’라는 전적인 고백이다- 보았듯이 하나님이 귀하게 받으시는 것은 바리새인들처럼 ‘입술신앙’이 아니다. 신앙은 인격이며 삶이다. 온전하고도 전적인 헌신이다(44). 이로써 진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은 드러났다.
따라서 바리새인들의 옛성품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좀먹지 못하도록 좀 더 진심 어린 발걸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가까이 가야겠다. 복음이 가는 길에 무수한 ‘반대의견’들이 있었지만 주님은 여유 있게 저들(서기관들, 부자)을 따돌리신다. 그리고 율법의 죽은 조문이 아니라 살아있는 말씀을 바로 한 가난한 과부에게서 드러내신다.
시비꺼리를 찾고, 또한 자신들을 합리화시킬 수 있는 말씀으로만 인용하고 써먹는 한심한 바리새인들에게서 환멸을 느낀다. 저들에게는 하나님도, 진리도, 예수님도 없다. 오직 자신들만이, 그것도 상좌와 상석에 앉아 문안 받는 타락한 종교지도자들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인가.
진심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가.
하나님에게서 이웃의 탄식과 고통의 소리를 듣고 있는가.
이웃의 모습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보여주는 자로 승리하고 있는가.
마가복음 12장에는 이에 대한 답 가까이에 있는 세 사람이 있다. 주님의 설교 이후에 하나님의 나라에 가까이 온 서기관(32-34), 가난한 생활이지만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드린 한 과부(42-44), 그리고 예수님이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정말 주님 앞에서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는 자인가? 주를 향한 타는 목마름으로 두 렙돈 같은 마음을 들고 주님을 바라본다. 한 가난한 과부처럼 살아야 이것이 복음이고 가까이 온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수 있다. 서기관들과 부자를 반면교사 삼아 좀 더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 살아가기로 하자.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의 진짜 백성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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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31_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삶이다(막12.35-44)..m4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