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새벽 | 시4.1-8
고난과 기쁨의 협주곡
시인이 간증하고 있는 어제의 영적(靈的) 경험이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1)- 눈부시다. 비록 지금도 여전히 ‘인생들’(2)과 ‘여러 사람’(6)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승전가의 기초(1-5)
지금 현악기와 더불어 부르는 노래를 방해하는 ‘인생들’을 향해 시인이 던지는 화두는 이것이다: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2) 그러니까 내 승전가(勝戰歌)에 배 아파하거나, 그래서 아름다운 노래에 2절과 같은 이런 못된 절망가(絶望歌)라는 바이러스를 뿌리지 말라는, 일종의 준엄한 경고다.
곤난 중에 다윗을 너그럽게 하신 아름다운 어제를 추억할 수 있으니(1), 헛된 잡음에 현혹되지 않으니(2), 경건한 자를 택하신 하나님 편에 서 있으니(3), 죄로부터 벗어나 있으니(4), 오늘도 여전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의 자리에 서 있으니(5) 이처럼 간결하면서도 당당하고 명료하게 세상(인생들)을 향해 이처럼 승전가를 노래하고 있다.
안전감의 기초(6-8)
‘여러 사람’이 쪼아대는 불협화음을 듣게 되면 누구든 균형을 잃기 쉽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무너진다. 그럴수록 지난 날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1)던 바로 하나님을 보는 일에 실패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하지만 시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 즉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7a)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세상의 소리(2,6a)가 더 크게 지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자신을 안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붙든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8a) 왜 이처럼 놀라운 평안과 평화를 날마다 누리며 사는가? 그것은 지극히 평범하고 다 아는 말이다: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8b)
이 믿음과 신뢰가 안전감의 뿌리다. 시인의 오늘은 이처럼 하나님 안에 있다. 세상은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7b)로 넘쳐나도 그의 안전감의 유일한 기초는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에 두신 기쁨이다(7a).
그럼에도 ㅎ사람들은 다윗의 승리와 그를 승리케 하신 분, 하나님에게는 정작 관심이 없다. 하지만 시인은 쉼 없이 밀려오는 고난의 여정 바로 그 한 가운데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승리를 외치며, 그 승리의 기초 위에서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안전감을 고백하고 있다.
그는 고난 속에 핀 승리의 기쁨을 맛본 자로서 기도를 토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두신 기쁨’(7a)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껄이는 한심한 말, 곧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6a)라는 비아냥을 들을 수 밖에 없는 처지인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바로 이 대목이 시인뿐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나 역시 직면하고 있는 삶의 자리다.
나 역시 ‘인생들’(2) 앞에 다윗처럼 승전가의 증인이고 싶다. 또한 나 역시 ‘여러 사람’(6a) 앞에 다윗처럼 나의 안전감의 기초가 하나님이심을 증거해야 한다. 하나님은 지금 부르고 있는 내 노래의 멈출 수 없는 멜로디다. 오늘도 이 노래가 나에게서, 우리 가정에서, 우리 교회에서 주께 올려드리는 제물되기를 원한다.
[설교듣기] ↲
200504_ 고난과 기쁨의 협주곡(시4.1-8).m4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