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새벽 | 시8.1-9
참 아름다와라!
다윗은 늘 일상에서 만나며 보는 세상을 통해 하나님의 주(Lord) 되심과 조물주(造物主) 되심을 찬양한다. 자연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숨결과 영광을 보고 찬양할 수 있다는 것, 평범하지만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다윗에게서 확실하게 배워야 할 피조물의 모습이다.
창조의 하나님, 찬양합니다!
하늘과 달과 별을 보며 하나님이 만드셨음을 고백하는 사람(3), 그리고 그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1), 피조물의 자리에서 창조주를 노래하는 사람(4-5), 창조된 세상을 향한 인간의 책임과 소명을 붙들 수 있는 사람(6), 하늘과 땅과 바다 모두를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7-8), 그가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자연계시의 빛 안에서도 이처럼 위대하게 찬양할 수 있는 다윗에게서 신앙의 거장다운 면모를 본다. 평범한 듯 보이지만, 어떤 면에서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이랄 수 있는 것을 통해서도, 그러니까 모든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을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영성임에 틀림없다. 이것이 “주의 이름이 …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1,9) 안에서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하는 다윗의 아름다움이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무한하신 하나님 앞에 서 본 자만이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유한한 인간인가를 절감한다. 다윗은 창조의 세상을 보는 것만으로 그분 앞에 무릎을 꿇는다. 지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과 연결하고 그 안에서 호흡하며,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또 자신을 아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피조물된 인간의 지극히 당연한 본분이다. 이런 점에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표상이다.
정말이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4) 이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 찬양의 제사인가. 한편 하나님 앞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살아간다. 바로 2절의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과, 늘 황송한 인생임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똑같은 눈, 입, 마음, 심령, 생각을 따라 하나님의 창조 세상 앞에 역시 동일하게 살아가고 있음에도 이처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어리석은 사람(2)과 다윗만이 아니다. 나 역시 ‘OOO이 무엇이기에’ 나를 생각하시며, 돌보시는지... 내가 무엇이기에 “하나님(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셨”는지, 이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할 인생인가를 알게 되었기에 다윗처럼 늘 내 분수를 알고 경거망동(輕擧妄動)하지 않기를 다시금 다짐해 본다. 아,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이 세상을 살 충분한 이유 있음을 날마다 펼쳐지는 창조의 아침에 이처럼 주님께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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