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346수요 | 섬기는 그리스도인(막10.32-45)

346수요 | 10.32-45

섬기는 그리스도인

(맛있는 마가복음, pp.114-115)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는 말이 있다. 10장은 이렇듯 요지경 속이다. 바리새인들은 주님을 시험하고(1-12), 제자들은 어린아이들을 무시하고(13-16), 부자 청년은 세상 재물과 영원한 천국과의 교차로에서 재물 쪽으로 가 버렸다(17-31). 이 와중에 예수님은 세 번째 수난예고를 하시는데(32-34)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자신들만의 소원을 주님께 청구하고(35-40), 다른 열 제자들은 이를 분히 여긴다(41). 뭔가 안팎으로 심각한 균열 조짐이 감지된다. 모두가 다 자기 중심적이다. 과연 이 문제를 주님은 어떻게 풀어 가실까.

 

섬기시는 그리스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32), 주님의 마음은 비장하기만 하다(33-34). 죽음이 기다리는 곳, 그분은 지금 죽으로 가는 길을 조금씩 재촉하고 계신다. 주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바리새인들은 그들대로(1-12), 제자들은 제자들대로(13-16), 율법주의자는 그들대로 각각 자기 목소리를 내며(17-25), 주께서 제시하시는 십자가로 가는 길(26-34)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 야고보와 요한까지 가세한다(35-39a). 참으로 착잡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주를 위해 살아야 할 제자가 아닌가. 그런데 주님이 오히려 자기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 주어야만 한다라고 말하고 있으니 참으로 가관이 아닐 수 없다.

 

     28 베드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31 예수님: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37 야고보와 요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다른 열 제자들도 마찬가지다(41). 하나 같이 제자들이 다 이 모양일까. 이제는 알아들을 때도 되었는데, 이제는 정신차릴 때도 되었는데, 이제는 주님을 닮을 때도 되었고, 듣고 보고 깨달은 말씀을 따라 주님의 마음과 의중을 읽을 때도 되었는데 아직도 제자들은 제자리걸음이다. 오히려 반목과 질시가 난무한다. 두 제자가 잘 하고 있다는 뜻에서가 아니라 어찌된 게 남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한다. 자기 밖에 모르고, 자기 목에 메달을 거는 식으로 벌써부터 논공행상(論功行賞)에만 관심을 나타낸다. 주님은 지금 죽으러 예루살렘에 올라가고 계심에도 말이다.

정상은 외롭다고들 한다. 아마도 주님 마음이 착잡하시고 시리도록 아프셨을 것 같다(이 다음에 천국 가서 여쭤봐야겠다). 하지만 주님은 이번에도 감정이나 분노가 아닌 설득과 가르침으로 뭔가 모르게 흔들리는 제자들의 심성을 평정하신다. 주님은 이방의 힘깨나 쓰는 자들과 제자들이 달라야 한다고 하신다(42-43a). 성도는 세상방정식으로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법칙을 따라 살도록 부름 받은 자들이다. 그 나라는 세상의 색깔이 아닌 하나님이 펼쳐 보이신 무지개 빛 나는 것으로, 그리하여 세상과 다른 삶을 사는 자들로 그 빛 앞에 모여드는 공동체다.

주님이 제자들 안에 꿈꾸신 나라는 세상나라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게 43-45절이 가르치는 진리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 자체가 섬기는 자로, 모든 사람의 종으로,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 속하는 것을 위함이었다. 이게 주께서 꿈꾸신 나라의 모습이다. 하지만 10장의 등장 인물들 가운데 그 누구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도토리 키재기나 하고 있다. 이방인들과 똑같이 오직 크고자 하는 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들로 가득 차 있다면 십자가로 가는 길은 요원할 뿐이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 그것은 십자가의 죽음에 자신을 내 놓으시면서까지 섬기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강력하게 말씀하신다. 주님마저도 심기는 분이시라면 무슨 다른 말이 더 필요할까. 주님은 제자들이 넘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섬김이라 보셨다. 자기 밥그릇 싸움이나 하고, 자기 공적이나 주장하고, 자기 마음대로 권세를 부리는 것을 위해 사는 것이 얼마나 부끄럽고 한심한 일인가를 좀 빨리 깨닫으라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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