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347새벽 | 하나님의 지혜 vs 사람의 지혜(고전2.1-16)

347새벽 | 고전2.1-16

하나님의 지혜 vs 사람의 지혜

 

하나님의 지혜의 또 다른 이름_십자가(1-5)

바울만큼 말과 지혜’(지혜의 권하는 말, 4a)에 뛰어난 자가 또 있을까(1). 그런데 그는 지난날 고린도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바로 그 복음을 전할 때 이런 것들을 의지하지 않았다(2). 오히려 네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3)고 회고한다.

자신이 그처럼 사람의 지혜’(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 지혜의 권하는 말)에 의지하지 않고 십자가의 복음만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3절처럼 연약한 모습이었음에도-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느냐는, 그렇다면 이는 바울이 한 것이 아니고, 그러므로 너희 믿음의 기초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 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타협할 수 없는 선포를 하고 있다. 이처럼 시작된 건강한 교회가 말의 지혜가 낳은 분쟁의 열매 같은 것을 맺고 있으니, 고린도교회는 그만큼 복음에서 멀어져 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요 십자가 복음이 답이다고 선언한다.

 

하나님의 지혜 vs 사람의 지혜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우리에게 알려진 하나님의 지혜와 인간의 사유로부터 만들어낸 세상의 지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결국 너희’(1-5)우리’(6-16)와 같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에 서 있다면, 그럼 너희 안에 있는 분쟁은 과연 무엇이냐를 생각하도록 하고 싶어서다. 동일한 지혜라면 분쟁타령이나 하는 교회로 추락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렇듯 세상(통치자)의 지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지혜와 단절되어 있다. 만일 이 지혜를 이 세상의 통치자들이 알았다면 저들은 영광의 주를 결코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이다(8). 동시에 너희가 이 지혜를 알고, 또 그 안에 있다면 결코 성도의 신분(1.2,30)과 다른 세상의 지혜 수준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았을 것이다.

 

교회의 건강은 얼마나 말잔치가 풍성한가에 있지 않다. 바울이 써내려가는 치료법(처방전)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으로 다시 돌아가라는 것이다. 인간의 지혜가 난무하는 교회로는 희망이 없다는, 결국 너희가 그거나 하고 있으라고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3) 하지 않았음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바울은 자신이 할() 일과 성령님이 한() 일을 구분한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그것만큼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었으며, 동시에 그것을 자신의 삶과 복음의 현장에서 그대로 준행하며 살았다. 복음보다 앞서지 않으려는 마음,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1b)과 결합된(신인협동) 복음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의 복음만을 전하며 살았던 바울에게서 말의 지혜를 앞세우려는 나의 어리석음과 부끄러움을 본다.

십자가의 복음을 사람의 말의 어떠함으로 더 풍성하게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죄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마저도 듣기 좋은 말로 설명해 버렸던, 그러니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4b)은 온대간대 없고, 그랬으니 성도들의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지혜의 말에 길들여지는 것이 아닌가.

주님이 서실 자리에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그토록 철저하게 거부하며 살았던 바울을 생각한다. 그는 주인과 종은 구분(구별)할 줄 알았고, 또한 청중들에게도 그것을 잘 분별하도록 하는 일에 실패하지 않기를 민감하게 살폈다. 바울은 주님과 복음을 자신의 능력의 유무에 따라 좌우되지 않도록 하는, 그러니까 복음이 능력인지 복음을 전하는 자신이 능력인가에 대해 혼돈하지 않았고, 또한 이런 소용돌이(유혹)로부터 철저하리만큼 자신을 지켰다.

더 쉬운 말로 하면, 바울은 복음을 사유화(私有化)하지 않았다. 바울마저도 복음과 주님의 영광 뒤에 숨었다. 이 아침에 주님은 말씀하신다: “, OOO! 너의 정체는 무엇이냐? ‘너희, 아니면 우리!”

 

[설교듣기]

200604_ 하나님의 지혜 vs 사람의 지혜(고전2.1-16).m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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