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주일 | 요21.1-14
다시 ‘숯불’ 앞에서
‘숯불이 있는데’(9)에서 ‘있는데’라는 헬라어 의미는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놓이다, 놓여 있다’(keimai)라는 뜻의 단어다. 이 부분을 주목한다. 숯불, 그러니까 불타고 있는 불무더기를 만들어 놓고서 베드로를 맞으시는 주님! 과연 여기에는 어떤 목적과 뜻하심이 들어있을까.
한편 베드로에게 있어서 ‘불’과 연결되는 장면은 크게 둘이다. 요한복음 18장과 21장이다. 자, 그럼 앞서 18장에서 베드로는 불과 관련하여 어떤 일이 있었을까.
베드로 - ‘불을 쬐더니’
[요한복음 18장] - 숯불❶
“시몬 베드로와 …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서 … 불을 쬐니 …”(15,18)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 부인하여 이르되”(25)
→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27).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눅22.61-62)
베드로가 “그 때가 추운 고로 … 불을 피우고”(18.18) 있었는데 베드로도 그 ‘불을 쬐더니’(18.18,25)의 상태에서 공히 예수를 부인하였다. 그리고 주님의 예고대로 닭이 울었다. 여기서 더 재미난 것은 닭이 울자 예수께서 보이신 반응에 대한 누가복음의 기록이다: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눅22.61-62) 이렇듯 닭 울움소리는 물론 특별히 피워진 불더미는 다른 제자들은 몰라도 베드로에게는 뼈속 깊이 각인된 지울 수 없는 흔적이다.
호언장담했으나 지킬 수 없는 허풍이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자신은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주를 저주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앞서 두 번이나 제자들을 찾아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3a)며 디베랴 호수, 그러니까 예수님을 처음 만나고 부르심을 받았던 갈릴리 바다 어부의 자리로 되돌아가 버린 것 아니겠는가.
베드로Ⅱ - 숯불❷
아침이 밝아오는 참으로 추운 시간에 거의 1㎞ 정도의 거리를 온 몸으로 바다를 가로질러 왔다(8). 그런데 거기에 따뜻한 숯불이 준비되어 있고, 아침 식사까지 준비되어 있었다(9). 다름 아닌 예수님과의 불무더미에서의 두 번째 만남이다. 베드로는 불과 얼마 전에 바로 그 첫 번째 ‘숯불’ 앞에서 주님을 부인했었다. 그런데 지금 주님이 바로 그 숯불을 피워 놓고 베드로를 맞이하신다(9). 베드로는 숯불 앞에서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지만 주님은 숯불 앞에서 사랑의 음식을 준비해 놓으시고 그를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
비로소 두 번째 불무더미 앞으로 베드로를 불러내신 주님의 마음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한다.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한 상태로 살아갈 수 없다. 무엇보다 그런 모습으로 제자로서, 사도로서, 사도행전 시대를 열어가는 목회자로서, 동시에 한 사람의 성도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베드로는 주를 위해 죽음까지 불사하며 함께 하겠다는 고백과 그에 따른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고백을 지킬 능력이 없었다.
문제는 넘어지고 무너져서 그 상태로 살아가다가는 그야말로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상태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이때 주님은 내가 넘어진 바로 거기 나의 숯불에 다시 나를 세우신다. 묵상을 통해, 예배를 통해, 기도를 통해, 어느 날 ‘내가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을 통해 내게 찾아오신다. 그리고 그 앞에서 ‘너 왜 이러고 있느냐? 정신 정말 안 차릴거냐? 한번 혼나 볼래?’ 그러시지 않으신다.
오히려 베드로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문제의 표면인 숯불이 아니라 그것의 본질이자 내용을 터치하신다: “사랑하는 OO아, 너 나를 지금도 사랑하지?” 베드로는 얘기한다: 주님을 사랑할 능력은 내게 없지만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진심입니다. 하지만 난 주님을 부인했고, 저죽까지 했습니다. 다시 숯불 앞에 서니 면목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지난 과거의 숯불에 대해 말씀하시지 않으신다. 그리고 곧장 미래로, 소명으로, 비전으로, 청지기로 불러내신다: “내 양을 먹이라!” 비록 숯불 앞에서 넘어졌으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회복과 열매의 자리로 떠나라 하신다: “네가 젊어서는 네 스스로 옷을 입고 어디든지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네가 나이 들어서 두 팔을 벌려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네게 옷을 입히고,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너를 데려갈 것이다.”(18, the MESSAGE)
베드로는 이 숯불을 보는 순간, 과연 어땠을까. 그는 오히려 온 몸과 마음이 얼어붙는 깊은 고통과 부끄러운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다. 어쩌면 베드로에게 있어서 이 숯불과 닭 울음소리는 바울을 늘 괴롭혔던 ‘육체에 가시’(고후12.7)와 같았다. 때로 우리의 약함은 그만큼을 주님의 능력에 붙들려 살도록 하며, 그 주님을 의지하게 만든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12.9a) 베드로는 숯불에서 주님을 부인했지만 주님은 숯불 앞에서 베드로를 회복시키신다. 이것이 베드로가 평생 품고 살아가야 주님의 흔적이다(갈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