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371주일 | ‘떡으로만’에도 영성이 있다(신8.1-6).

371주일 | 8.1-6

떡으로만에도 영성이 있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차지하리라.”(1)

       → 광야 40(3): 떡으로만이더냐?

                                그럼 말씀으로만이더냐?

            not only but also 말씀

   ▪잊어버리면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19-20)

  

  

광야에서 떡이란?

 

떡으로 사는 것이 맞다.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지 말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6.31-32) 주님도 일용할 떡이 필요함을 부정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떡만 있으면 되는 것일까.

하지만 떡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 떡을 부정하거나,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어서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이를 위해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첫째, 떡을 해석하고 읽어낼 수 있는 시각(용량)이다.

먹고 사는 문제에 묶이면 떡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는다. 그러기 때문에 통장에 잔고가 줄어들어 가면 불안하고, 떡이 좀 부족하다 싶으면 하나님도 잊어버린다. 정리하면, 떡에서 떡의 영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떡이 있고 없고에 따라 요동친다. 이럴수록 어떻게든 떡을 확보하고 가져야 한다고 집착한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은 자연스럽게 후순위로 밀린다. 믿음, 직분, 사명은 점점 약해지고 보이는 떡에 목숨을 걸고 살아간다.

둘째, 인생은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다는 것을 인정하고 믿어야 한다.

이스라엘은 만나와 메추라기가 40년 동안이나 날마다 부족함 없이 공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는 떡의 영성에 이르지 못했다. 넘치고 풍족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신앙에 이르지 못했다.

, 무엇인가? 떡이 없어 부족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지 않았다. 반대로 만나라는 떡이 넘쳐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았다. 그렇다면 떡의 영성은 떡이 많고 적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럼 무엇으로 해결되는가?: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3) 그렇다. 이 말씀을 믿고 신뢰해야 한다. 그래야만 떡이 없을 때 실망하고 좌절하고 낙심하고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야만 떡이 풍부하고 넘칠 때 그것이 내 능력과 힘으로 얻는 것이라 교만하고 우쭐하고 하나님의 것을 내 것으로 바꾸는 죄를 범하지 않게 된다. 이것이 떡의 영성이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란?

 

그렇다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은 무슨 말씀일까? 이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떡은 분명 말씀과 연결되어 있다. 떡은 단지 배부르게 하고,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육신적인 것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떡이 진정 그 가치와 의미를 드러내려면 말씀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떡은 말씀과 분리되지 않는다.

따라서 떡으로도 하는 게 무엇인가를 말씀으로 이해하고, 깨닫고, 믿어야 한다. 이것이 없이는 떡은 단지 육체를 유지하고 육신을 위한 식량, 곧 밥이 될 뿐이다.

떡은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해야 한다. 떡을 하나님 없이, 하나님과 무관하게, 하나님의 지배권 밖으로 밀어내면 안 된다. 그래서 떡은 내가 땀 흘리고, 노력하고, 애쓰고, 수고해서 만든 것이니 내 것이다는 생각은 틀린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의 실력과 믿음을 키우지 않으면 떡의 있고 없음에 날마다 요동치며 흔들리는 인생을 벗어나지 못한다. 늘 떡에 묶이고, 떡에 끌려다니고, 떡을 하나님처럼 섬기며 살아가게 된다.

 

   떡으로만 살고 있는가?

   돈으로만 살고 있는가?

   육신의 부요함으로만 있는가?

   탐욕으로만 살고 있는가?

 

떡 앞에 무너지지 않으려면 말씀으로 산다는 건강한 믿음에 서야 한다.

광야이든 가나안이든 떡과 말씀, 이 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이게 오늘 신명기와 예수께서 가르치신 신약의 복음이 공통적으로 전하는 진리다. 떡이 말씀을 끌고 가는 게 아니다. 말씀이 없이는 떡은 단지 육신의 약식이자 탄수화물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단지 육신의 떡으로만 살아가는 존재라 하지 않으신다. 그럴 수는 없다.

이것이 떡으로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not only () but also 말씀이 주는 절묘한 메시지다. 세상은 말씀, 하나님이 밥 먹여주냐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 밥 먹여준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은 이 둘을 통해 인생을 먹이시고 인도하신다.

오늘 감사절 아침이다. 지난 전반기를 하나님은 먹이시고 입히시며 인도해 오셨다. 이를 무엇으로 아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에서다. 떡은 이처럼 비로소 말씀을 통해 진정한 가치와 의미와 목적이 드러난다. 이것이 하나님이 의도하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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