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385새벽 | 홍수주의보(사8.1-10)

385새벽 | 8.1-10

홍수주의보

 

경고의 나팔과 임마누엘’(7.14)의 예언 앞에서도 아하스는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그는 깨닫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고 사악한 악()으로 도전한다.

 

이름 억세스(1-4)

하나님은 이사야의 아들들의 이름에서까지 유다의 희망을 찾고 있다.

스알야숩(Shear-jashub, 7.3): “남은 자가 돌아올 것이다.”는 이름의 뜻을 가진 이사야(‘그가 구원하신다’)의 큰아들은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연합군을 두려워하는 아하스에게 두려워하지 말며 이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7.4-7)는 하나님의 사인(sign)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아하스는 앗수르를 의지하여 자신과 유다의 위기를 넘겨보려고 모든 역량을 총동원한다.

마헬살랄하스바스(Mahershalalhasbaz): 아하스가 우군(友軍)으로 여겼던 앗수르를 하나님은 적군(敵軍)으로 만드셔서 아하스에게 보내실 것을 말씀하신다(7.17- ): “여호와께서 임하게 하시리니 곧 앗수르 왕이 오는 날이니라.”(17) 아하스가 스알야숩이라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자 앗수르라는 넓은 문을 통해 심판의 파리와 벌(18), 그리고 찔레나무와 가시나무를 온 유다 위를 덮게 만드실 것을 선언하신다(23-24a). 그리고 이를 통용 문자’(1)노략이 속히 올 것이고 희생이 임박했다.”는 이름의 뜻을 가진 마헬살라하스바스라 쓰게 하시고 두 증인 제사장을 세워 증거하게 하신다(2). 그리고 이사야의 둘째아들이 태어나자 하나님은 이 아들에게 그 이름을 쓰게 하신다(3). 이 예언대로 불과 얼마 후에 성취된다.

 

앗수르 채찍(5-8a)

하나님은 할아버지 웃시야왕 때부터 아버지 요담왕을 거쳐 20년 이상을 이사야를 통해서 유다에 말씀하신다. 그런데 그는 아직도 여호와를 버리고와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르신과 르말리야) 사이에서 기뻐하느니라로 머뭇거리고 있다(6; 7.4). 그러니까 하나님을 버리고 아람을 좋아하고 있다.

마침내 앗수르 채찍소리가 유다의 하늘에 진동할 것이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 물이 유다의 목에까지만 찰 것이라는 점이다(8a). 그렇다면 노아홍수처럼 온 땅을 덮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 아닌가. 하나님은 죄를 벌하시지만 그것이 곧바로 유다의 종말은 아니라는 점을 밝히심으로써 심판과 진노의 집행이 하나님의 최종적인 모습은 아니심을 분명히 하신다. 비록 진노의 채찍을 손에 드셨지만 하나님의 가슴은 여전히 사랑으로 따뜻하다.

 

앗수르 채찍이 온 유다를 덮을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임마누엘이시다. 마치 자녀의 잘못을 고치기 위해 회초리를 들 때에도 여전히 그는 부모이듯이 말이다. 심판이 집행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유다와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신다. 따라서 과정적 심판은 최종적 파국과는 무관하다.

신호등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달리다가는 필름이 끊어지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반복해서 알려주신다. 그렇다면 빨간불은 나의 가는 길을 가로막고 나를 골탕 먹이시기 위한 하나님의 심술이 아닌 것 아닌가. 또한 파란불 역시 내 마음대로 달리는 것을 보장하는 비장의 카드가 아님을 생각해 본다. 좌회전 화살표가 있고, 우회전 화살표가 있고, 무엇보다 전혀 다른 기능과 성질의 브레이크와 가속기(accelerator)가 동시에 주어졌음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더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것은 경고판만이 아니라 임마누엘이라는 소망의 깃발이 하나님과 함께 펄럭이고 있다는 점이다. 조금만 정신을 차리면 이 둘의 의미와 목적을 놓치지 않을 텐데, 조금만 정신 차리면 앞에 있는 임마누엘을 볼 수 있을 텐데, 해서 나의 무지와 어리석음과 죄 때문에 이런 복()된 빛이 어둠에 막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경고판 앞에 서 있는 묵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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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8)
    머리까지 잠겨서 진멸되지 않게 하시는 자비와 긍휼이 무한 하신 하나님, 누구든지 정신 차리고 임머누앨의 소망 앞에 이르기를 기다리시는 그 은혜로 살아간다.
    오늘 기억해둘 멋진 문장 하나,
    '과정적 심판은 최종적 파국과는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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