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387새벽 | 메시야, 흑암에서 빛으로!(사9.1-7)

387새벽 | 9.1-7

메시야, 흑암에서 빛으로!

 

빛은 땅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온다. 세상이 어둠(8.20-22) 가운데 있을 때(이것은 죄로 말미암았다), 사실 어둠을 만든 것은 유다의 타락과 범죄 때문이지만 흑암을 광명으로 역전시키거나 회복시키는 것은 죄인 스스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과 능력 밖에 있다. 이사야의 탁월한 통찰과 문학적 터치는 명암(明暗)의 교차 기법에서 증폭된다. 흑암과 광명의 대조가 그것이다: 흑암(8.20-22) 광명(9.1-7)

흑암이 광명에 의해 어김없이 물러가는 것, 그 중심에 임마누엘(메시야)이 잉태되고 싹이 나 자라 결실할 것이 예고되고 있음이 이사야가 비추는 한줄기 빛이다. 다시금 메시야의 오심에 대한 찬란한 빛이 유다 온 땅을 비추기 시작한다. 어둠은 물러가고 새 날이 올 것이다. ‘임마누엘’(7.14)에서 그의 이름’(6)의 영광을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실 것이다. 마침내 유다의 어둠에 메시야의 빛이 임하기 시작한다.

 

전암후광(前暗後光, 1-5)

   전에 고통 받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후에는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이 비치도다

죄는 언제나 고통과 흑암과 멸시와 사망을 동반한다(1-3). 이사야가 유다의 궁극적인 희망을 임마누엘이신 메시야의 오심에서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님께서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심으로 이 예언은 성취된다(1b-2 4.13-17; 4.14, 2.11 참조). 마침내 참 빛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 속으로 들어오셨다(1.1-10). 선지자는 어둠을 넘어 빛의 은혜 앞으로 나아오는 것만이 유다의 유일한 희망임을 외친다. 마침내 평화의 날이 선포된다(5). 비록 아직은 어둠에 있는 유다 백성들이지만 은혜의 을 비추신다. 하나님은 거기까지 유다의 미래를 그리고 계신다.

 

메시야(Messiah, 6-7)

흑암이 없는 빛의 약속(1-5)은 메시야, 한 아기의 탄생을 알리는 어인(御印)으로 확증된다(6-7). 이렇게 해서 임마누엘’(7.14)이 좀 더 진전한다. 이 세상에 주셔서 태어나게 하사 우리의 통치자가 되실 것이니 그 이름은 기묘자’(wonderful), ‘모사’(counsellor),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희망이란 단어 자체가 사치스러울 정도로 유다는 그야말로 흑암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메시야의 오심뿐이다. ‘조금’(1.8-9) 남겨 두신 것이 남은 자’(6.11)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윗의 후손을 지나 예수님을 통해 확장될 것이다.

 

흑암을 빛으로 몰아내시겠다는 게 하나님의 생각이다. 그러니 내 생각대로 아무 희망이 없다고 속단하지 말자. 황무지에서 장미꽃을 피워내시는 분이 하나님 아니신가. 나의 초라한 절망과 결별하고 주의 위대한 희망 앞에 선다. 아직 덕지덕지 남아있는 어둠과 죄의 파편들이 나를 비웃고 있지만 상관없다. 빛을 통해 그것이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 것인가를 알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시작된 이 거룩한 영적 싸움을 해 볼 만 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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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 시작된 이 거룩한 영적 싸움' 진실로 이 싸움을 해 볼만한 충분한 이유는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7)구원자,메시야를 보내시고 성령으로 함께 하심을 믿기 때문이다.
    '~어찌 그 말씀 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기에
    그 분의 말씀은 정확무오 하심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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