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398주일 | 4인4색 부모행전1: 아버지 아브라함(히11.17-19, 창24.1-4)

398주일 | 11.17-19, 24.1-4

44색 부모행전1: 아버지 아브라함

 

아브라함에게 부모라는 옷, 아버지라는 이름을 올려놓고 자녀를 바라보면 어떤 모습일까. 아브라함의 생애에서 아들 이삭과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에서 아버지로서의 아브라함을 드려다 본다. 동시에 그 아버지를 아들 이삭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이해했을까.

 

1. 모리아산에서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다(22).

아버지를 따라 나선다: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어찌 즐거운지 난 몰라.’

예배에 대해 대화와 나눔을 할 만큼 신앙적으로 잘 자랐다.

제물이 되어 제단 위에 올려질 때 그는 죽음 앞에 겸허히 아버지의 칼을 받는다.

모리아산에서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을 만난다.

이 모든 과정을 아들 이삭 역시 직간접으로 경험하고 아는 동선에 서 있었다. 이삭은 생생하게 다 보았다. 20년 가까이 아버지가 아들 이삭 자신을 어떻게 키워 왔는가를... 그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이삭 역시 보아왔다. 때문에 이삭은 모리아산 번제단 위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아들 이삭 자신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목에 칼이 내려오려는 그 순간까지도 아들 이삭은 아버지를 원망하고 자신의 죽음을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아버지처럼 그도 순종부자(順從父子)로 서 있었다.

그런데 결박되어 아버지의 칼을 받으려는 순간 하나님이 오셨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모리아산을 내려온다. 여기에 어떤 말이 더 필요할까. 아버지 아브라함만큼이나 아들 이삭도 하나님을 만났고, 보았고, 그분의 음성을 들었고, 이 모든 일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본 것이다. 과연 아버지의 믿음의 반열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삭은 아들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서 있는 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아버지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에 서 있는 자신을 보았다. 그리고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 자신 사이에 서 있는 하나님을 보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브라함에게서 무엇을 배우는가. 믿음이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의 계명과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을 자녀가 보고, 긍정하고, 그런 아버지요 부모라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모의 신앙만으로는 아니다. 그렇다고 아들의 믿음만으로도 아니다. 우리는 지금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사람으로 다시 새롭게 지어져야만 한다. 이것만이 아들과 딸들의 희망이자 미래다. 이 믿음은 다른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되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다.

우리 부모에게 필요한 것이 이것 아닐까. 부모인 아버지와 어머니 안에 일하시며, 역사하시는 우리 주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주는 삶 말이다. 이는 성경 지식이 아니고, 이래라 저래라는 잔소리형 신앙 언어가 아니고, 명령에 의해 마음이 아닌 몸만 기독교에 적셔지는 그런 종교화되고 문화화된 기독교를 전달해 주는 것으로는 결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 무엇인가. 내가 변해야 한다. 아브라함을 이야기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아브라함처럼 사는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2. 아들 이삭의 배우자를 찾고 구하는 결혼 준비가 아름답다(24).

   아브라함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택하지 말고.”(3)

   “내 족속에게로 가서 택하라.”(4)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7)

   종 -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가 알겠나이다.”(12-14)

 

이삭의 결혼은 아버지로서의 모든 것이 아들에게 넘어가고 이어지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 우선하는 것은 며느리의 기준이다. 다른 말로 하면 아들의 배우자의 조건이다. 그는 전혀 세속적이지 않았다. 빈부귀천, 학벌, 고향, 출신, 가문, 배경, 외모 등 우리가 그토록 결혼리스트에 올려놓는 것 가운데 어떤 것 하나도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아브라함의 관심은 이런 허접한 게 아니다.

핵심은 이것이다: ‘그 어떤 조건도 타락한 가나안 문화와 풍습에 해당되지 않아야 한다.’ 그는 조카 롯을 통해서 소위 도시문화라는 가나안 문화의 끝을 보고 있었다. 다름 아닌 하나님의 심판이다. 하나님과 반대쪽으로 향하고 있는 반신문화(反神文化)가 믿음의 조상 가문에 들어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리 되는 날엔 언젠가 소돔과 고모라처럼 그렇게 무너지고 불타 없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을 테니까. 이런 생각과 방향을 잡기까지는 다음 몇 가지(2 Case, 1 Card)에 영향이 오고간다.

CASE- : 아브라함과 롯, 혼사(婚事)가 달랐다. 롯은 두 딸을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 불신결혼시켰다.

CASE- 이스마엘: 가나안되어가는 이스마엘의 가정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는 반면교사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4.28-29)

불신자와 결혼은 성경이 금하는 것이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후6.14-16a; 21.21 참조)

그래서 아브라함이 꺼낸 비밀병기가 종 엘리에셀 CARD. 아브라함은 아들 결혼을 하나님께서 주도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시리라.”(24.7b) 이로 보건데 아브라함 자신이 원하는 며느리를 구하지 않았고, 그보다 하나님이 이삭에게 맞는 배우자를 허락하시기를 기도하며 주께 이를 맡겼다.

아버지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이 하나님 앞에서 누구인가에 대한 분명한 이해(믿음)가 있었다. 이것이 자식을 위해 아버지가 언행하는 모든 범사의 가장 중요한 기초다.

  

자식이 자라가며 대()를 이어갈수록 믿음이라는 주제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미래에 대한 약속 하나 붙들고서 자신과 가족들에게 주어진 시간표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분명 자녀들에게는 크나큰 도전이고 모범이기에 충분하다. 믿음은 삶이고 복음이고 실상이다.

자식은 부모의 말을 듣고 이를 통해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는 게 아니다. 자식은 부모의 말을 통해 신앙이 성장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믿음으로 자라주지 않을 자식이 있을까. 자식은 부모가 어떤 삶을 사느냐를 보며 자란다. 그런 의미에서 아브라함은 자신이 고백하는 바 믿음을 온 몸으로 받아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를 온 몸으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럼 무엇인가. 아버지의 믿음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서의 신용이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이다. 소위 영적이고 신앙적인 부모에 대한 신용평가가 자녀들로부터 어떤 모양으로 고백되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자식이 부모의 영적 권위를 얼마만큼, 그리고 진심으로 알고 인정하고 믿고 따라주는가 이게 중요하다. 그러나 자식 또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걸음을 건강한 믿음 안에서 걷고 있어야 아버지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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