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새벽 | 창41.37-57
요셉 이야기
[1] 총리가 되다.
애굽 왕 바로는 <先 7년 풍년, 後 7년 흉년>에 대한 요셉의 해석(25-32)과 조언(33-36)을 이루어낼 자로 요셉을 지명한다. 마침내 꿈은 그를 총리로까지 이르게 한다. 이제 그는 <先 7년 풍년, 後 7년 흉년>을 대비하여 애굽을 지키고 보호하는 일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심은 과연 이 일이 그가 17세에 꾼 꿈과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에 있다.
한편 그는 바로의 중매에 따라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과 그의 나이 30에 결혼을 한다. 그리고 흉년이 시작되기 이전, 그러니까 그의 나이 37세 이전에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낳는다. 역시 그는 아들들의 이름 안에 ‘하나님’을 잇는다(50-52). 비천할 때도, 존귀하게 되었을 때도 변함없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2] 17세의 꿈이 성취를 향해 움직이다.
물론 아버지 야곱과 가족들, 그리고 그의 형제들 모두는 애굽의 소식을 모른다. 무엇보다 요셉과 관련해서는 완벽하게 그렇다. 하지만 이 뜻 밖의 흉년이 이 둘을 잇게 된다. 놀랍다. 어렵고. 힘들고, 기근이라는 환난이 요셉과 그의 꿈을 잇는 씨앗이 될 줄이야: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57a)
요셉은 생각했을 것이다. 애굽, 흉년, 양식, 각국 백성... 그렇다면 고향의 부모와 형제들도 필시 흉년을 견딜 수 없을 것이고, 필시 그러면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올 것 아니겠는가. 노벨문학상이 빛나는 작가 토마스 만(Thomas MANN)은 그의 역작 <요셉과 그 형제들 1-6>(2011, 살림)에서 요셉은 그의 고향에서 애굽으로 이어지는 길목의 주요 통행로 담당관에게 가족들일 수 있는 행장을 보고하라는 전갈을 보냈다고 쓴다. 흥미로운 대목이다.
아마도 요셉은 이 흉년이 17세의 꿈이 이루어지는 통로가 될 것이라고 직감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브라함 언약(창 15장)의 성취를 위해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하셨음을 희미하게 이해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그 많은 나라에서 곡식을 사러 오는데 국무총리라는 고위공직자가 일일이 그들을 맞이하고, 곡식을 파는 일을 한다? 아마도 야곱의 가족일행이 왔음을 오늘로 하면 입국자 명단에서 확인하고 이 행렬을 총리대신 앞으로까지 이르게 했을 것 같다. 그러지 않았을까.
요셉의 ‘지혜’(39)는 시대의 트랜드를 읽는 지혜다. 그의 지혜는 신적(神的, 38) 지혜인데 이를 바로가 안다.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온 신적인 지혜를 바로가 어떻게 알았을까. 그것은 25, 28, 32절에서 요셉이 이미 고백한 것에서 요셉이 요셉이게 한 이가 다름 아닌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해석과 그것의 주체인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는 결론이 다 이루어졌거나 드러난 것이 아니다. 앞으로 무려 최소한 7년은, 그러니까 풍년 7년은 더 지나야 해석의 진위가 드러난다. 그럼에도 요셉은 이미 다 이루어진 꿈인 것처럼 말하고 선언한다.
요셉의 요셉됨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품어진다. 아직 자신이 꾼 꿈 역시 어디 하나 이루어질 그 어떤 흔적도 없어 보이는 때이고, 앞서 얘기했듯이 바로의 꿈 역시 최소 7년은 오롯이 숙성되어야 할 그걸 것이라는 점에서다. 그럼에도 하나님 안에서 거침 없다. 꿈을 꾸게 하신 이도, 이를 이루실 이도, 이를 이끌어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심을 믿어 확신하기 때문이다.
요셉은 이미 정답을 다 알고 문제를 풀어가는 듯하다. 7년 후, 이어지는 7년의 흉년기에 아버지와 형제들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하다. 이 뿐인가. ‘애굽 온 땅’(45,46,54) → ‘온 지면’(56) → ‘온 세상’(57)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일하시기 시작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