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9새벽 | 창46.1-27
언약을 붙든 예배자
브엘세바에서의 희생제사(1-7)
브엘세바(Beersheba, ‘언약의 우물’)는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고 그가 판 우물의 소유권을 확증한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21.25-32). 야곱은 지난 날 브엘세바에 살다가 형 에서의 진노를 피해 도망한 곳인데(28.10), 지금 그는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에 이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임재(찾아오심)를 경험한다(1-4).
한편 애굽은 그의 선조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금지의 땅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기근을 피하여 금지선을 넘으려 하고 있다. 어찌 보면 기근에 죽든지 불순종의 대가로 하나님에 의해 죽든지 할 수 밖에 없다. 바로 이 절명의 순간에 야곱이 한 일은 무엇인가. 그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그를 예배한다(1). 그러자 하나님은 그를 찾아오신다(2). 이것이 절묘한 해법이다. 예배자임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기근을 피하여 애굽으로 내려갔던 선조들(아브라함과 이삭)과 동일한 수준이다. 그는 이미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가나안이 언약의 땅이며, 이 땅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라는 걸 듣고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약속의 땅을 버리고 애굽으로 내려가야 하는 연약한 자신을 붙들고,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듯 부족하고 불완전한 예배자일지라도 그의 예배를 받으신다. 그분은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니 애굽으로 내려가고 있는 야곱일지라고 그의 예배를 받으시며, 동시에 그를 찾아오시는 분이시다. 이렇듯 예배자 야곱은 둘 사이에 끼어 어찌할 바를 몰라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방황하면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나아갔다. 이것이 야곱에게서 배우는 영적 비밀이다.
이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다시 확증하신다(3-4, 15.12-15 참조). 그는 큰 민족(3, 12.2, 21.18)을 이룰 것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마침내 애굽행은 결제가 났다. 애굽이라는 자궁에서 이스라엘을 민족으로 자라게 하는 일을 준비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15.12-21 참조)이 성취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서 명백한 선물로 확증되고 또한 주어지고 있음이 흥미롭다. 두려움은 예배하도록 했고, 예배는 언약이라는 소망의 문을 연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이처럼 예배를 좋아하시고, 예배자를 찾으시며, 예배를 받으시고, 예배자를 만나서 복을 부으신다. 마침내 야곱의 모든 근심과 걱정과 고통은 사라졌다. 그는 분명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를 하나님이 모르실리 없다: “두려워하지 말라!” 이제 하나님의 사인(sign)을 받았는데 무엇이 문제 되겠는가.
애굽에 내려간 야곱의 자손(8-27)
12장에서 겨우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꿈이 3대를 거쳐 4대에 이른 46장에서는 마침내 70명으로 늘어났다. 이제 하나님은 선조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아버지 야곱이라는 뛰어난 거장들로부터 신앙을 전수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지만 하나님은 애굽이라는 용광로에서 인생 채찍으로 그들을 단련하신다.
애굽에 들어간 최초의 인원이 70명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430년이 지난 훗날 수 백 만명으로 늘어난 이스라엘의 놀라운 확장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영광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애굽에 내려간 네 조상들이 겨우 70 인이었으나 이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하늘의 별 같이 많게 하셨느니라.”(신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