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447새벽 | 창세기에 심어 출애굽기에서 거두다(창50.15-26).

447새벽 | 50.15-26

창세기에 심어 출애굽기에서 거두다.

 

진정한 용서(15-21)

아버지 야곱이 죽은 후에 요셉의 형들은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또 하나의 모의를 한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요셉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눈물을 흘린다. 창세기에 기록된 요셉의 눈물, 그 아홉 번째 눈물이다. 죄는 이처럼 두려움을 동반한다. 요셉은 이 죄의 값을 해결하는 것이 자신의 손에 있지 않음을 알았고, 이를 또한 분명히 한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이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20) 그리고 간곡한 말로서 형들을 위로한다(21).

 

요셉의 생로병사(22-26): 창세기에 심어 출애굽기에서 거두다.

멸세기(滅世記): 또 하나의 시작

창세기는 모든 것의 시작을 알리는 찬란한 책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1.1) 놀라운 것은 장엄하고 위엄 있는 <창세기(創世記)>가 어떻게 된 것인지 죽음’, <멸세기(滅世記)>로 그 끝을 맺는다. 이것이 창세기의 독특한 구조이다(1.1 50.26). , 결말 치고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다. 생각해 보라. 이런 것을 두고 용두사미(龍頭蛇尾)라고 하지 않는가?

복락(에덴의 회복)은 이미 그들의 손을 떠났다. 멸세로부터의 탈출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멸세기로 끝일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불가항력(不可抗力)인 것이다. 그렇다. 이처럼 구원은 완벽하게(perfect) 이스라엘을 떠났다.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정체를 뒤흔드는 절대위기의 중심부이다. 오직 거역할 수 없는 죽음만이 연속적으로 그들을 맞이 하고 있을 뿐이다.

,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소망이 없는가? 이처럼 영원히 반복되는 죽음의 연속에서 풀의 꽃과 같이, “아침 안개의 이슬과 같이 그렇게 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는 말인가. 이것이 바로 <출애굽>의 구원사건이다. 여기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아니 인간이 한 일이라고는 전무(全無)하다: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14.13)

 

우리 역시 우리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멸세기에 혹 처해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여기서 더 심각한 영적 암()은 저항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그 장벽을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 보겠다고 절벽 앞에 호미를 들고 서 있음이다. 이렇듯 철저하게 이율배반적인 현대인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불행하게도 정작 자신이 모른다. 그 절망과 멸세의 절벽 앞에 홀로 외롭게 호미 들고 저항하고 있는 하나님께 철저하게 소외된, 창세와 그리스도의 구원과 완벽하게 단절된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정작 당사자인 자기 자신이 모르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이것 만큼 불행은 없다. 그러니 구원에 대한 생각이나 기대나 바램도 있을 수 없다. 때문에 그냥 처음부터 그는 멸세기다.

하지만 창세기가 이렇게 끝을 맺는다는 말인가. 이러려고 창세기인가. 아니다. 그럴 수 없다. 희망은 여자의 후손을 따라 흐른다. 이를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를 타고 흘러간다. 야곱과 요셉 역시 이를 바라보며 해골이라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묻히기를 유언한다. 그렇기 때문에 창세기는 비록 멸세기로 문을 닫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속에 생명이 자라고 있는 것 아닌가. 이렇듯 애굽이라는 자궁에서 땅과 후손의 언약을 이루어 가신다. 마침내 창세기는 에덴을 지나 족장들을 통해서 멸세기를 이겨낸다. 또 하나의 시작은 이렇게 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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