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463주일 | 신수성가Ⅱ.神手成家Ⅱ(룻4.13-22)

463주일 | 4.13-22

신수성가(神手成家)

 

룻기의 1장과 4장은 극적 대조를 이룬다. 죽음으로 시작하더니 출생으로 맺는다. 장례식으로 막을 열더니 결혼식으로 막을 내린다. 하나님을 부재하게 만든 비극으로 출발하더니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쁨과 소망으로 마무리된다. 한마디로 회복과 부흥의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여호와께서

이 모든 일의 주도권은 하나님이 쥐고 계신다. ‘여호와께서’(11-14)로 계속 이어지는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의 부재와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1장은 하나님 없이 살았고, 동시에 그럼에도 잘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인생들의 결론, 하지만 그것은 참담한 실패였다. 약속의 땅에 들어왔으나, 택한 선민이지만, 언약의 백성이지만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언행함으로써 잃어버렸던 10년은 가히 충격 아니었던가.

 

찬송할지로다!

나를 마라’(고통, 슬픔)라 칭하라.”(1.20-21) 이것이 나오미가 1장에서 자신을 가리켜 한 고백이다. 그녀는 탄식과 절망의 비가(悲歌)를 불렀었다. 그런데 4장에 이르러서 이웃들로부터 찬송하리로다’(14)로 화답을 받는 자리까지 나아가 있다.

 

 

족보 이야기

 

룻기의 저자는 매우 간결한 족보를 드라마가 끝나고 난 자막에 타자기가 만들어주는 활자기법과 같은 방식으로 비추어 주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먼 미래를 바라보도록 이끈다.

성경을 연구해 보면 두 종류의 족보가 다 등장한다. 성경의 족보들 가운데 몇을 좀 살펴보자.

 

1. 자신으로 끝나는 사람들이 있다.

(1) 고라 & 다단과 아비람의 가문(16.1-35)

   ▪레위 고핫 이스할 고라 ?

   ▪르우벤 엘리압 다단아비람 ?

(2) 아간의 족보(7.1,16-18,25)

   ▪유다 족속 세라 족속 삽디 갈미 아간 ?

(3) 엘리 제사장의 가문(삼상1.9, 4.12-22, 왕상2.27)

   ▪아론 이다말 엘리 홉니와 비느하스 이가봇 ?

(4)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가문(삼상9.1, 31.6, 삼하4.1- , 9.1- )

   ▪베냐민 지파 아비아 기스 사울 요나단 므비보셋 역대상 8.33-40

 

2. 전혀 새로운 출발(시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말: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를 낳고 ”(18a, 1.3a)

라합: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21a, 1.5a)

: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21b, 1.5b)

 

이들은 우리 식으로 말하면 다들 초신자들이다. 또한 제1대 신앙의 사람들이다. 주님은 언제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시기에 그렇다. 때문에 우리 역시 날마다 영적으로 새로워지지 않으면 결국 레이스에서 탈락하거나 도태(淘汰)될 수 있다. 잠시 위에서 살펴보았던 사람들처럼, 아니 룻기에 등장하는 그 기업 무를 자, 아무개씨처럼 말이다.

 

 

당신의 족보는 건강한가?

 

나로 끝나 버리는 족보인가? 그러니까 내가 최고의 정점(정상)에 기록된 족보인가? 그리하여 당대 이후에는 서서히 내리막길에 들어서는 몰락해 가는 족보인가? 아니면, 마치 다말과 라합과 룻처럼 새롭게 시작되는 축복의 밀알인가?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유다와 살몬과 보아스처럼 되어야 한다.

[개인적 적용] 나보다 자식들의 대()에 더 소망이 있는 족보여야 한다. 다음 대()에서 더욱 빛나고, 아름답고, 영광스럽고, 축복된 족보를 만들어 갑시다. 이것이 룻기 앞에 서 있는 우리가 깨닫는 하나님의 복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어떤 믿음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가?

[공동체적 적용] 교회도 지금이 5년 후보다 더 좋은 쪽이라면 소망이 없다. 물론 지금도 좋고, 미래도 좋아야 한다. 우리 교회 역시 과거나 지금좋으면 안 된다. 그래서는 소망이 없다. 초등학생은 중학생이 더 좋은 시절이 될 때 의미가 있다. 마찬가지다. 우리의 신앙도 오늘만 살다가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다.

 

분명 베레스의 가문은 갈수록 더 좋은 가문이다. 베레스에서 보아스로, 보아스에서 다윗으로, 다윗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어지는 메시야의 가문을 우리는 주목한다. 분명히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복된 가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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