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9새벽 | 시33.1-22
찬송할 이유있습니다.
시편 33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시다(1-5).
창조주요 통치하시는 하나님(6-12)
우주 만물이 창조된 것은 하나님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다(6-7,9a). 때문에 온 세상이 그것을 만드신 조물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 그를 경외”(8)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모든 것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목적과 계획(뜻함)이 있다. 그러므로 창조주요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생각은 영원하지만 그것을 거역하는 인간의 계획과 사상은 무너지고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10).
때문에 이처럼 찬양하는 것은 옳다(12):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위하는 나라는 복이 있다. 그분께서 상속자로 삼으신 백성은 복이 있다.”(The Message) 창조주는 만드시고, 인간은 그분의 계획을 받들어 섬기는 관리자다. 그러므로 이 우주와 만물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놀라운 계획을 잘 알아, 이를 성취해가는 청지기(상속자)로 살아갈 수 있음이 얼마나 복되고 영광스러운 일인가.
구원하시는 하나님(13-22)
하나님은 지금도 인생들이 창조주의 섭리를 잘 받들어 섬기며 사는가를 지켜보시며 또한 굽어살피신다(13-15). 나라의 흥망이나 인간의 생사는 모두가 다 하나님의 권능과 주권 아래 있다. 따라서 군대와 용사와 군마의 많고 적음이 구원의 조건이 되지 못한다(16-17). 세상의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영육의 굶주림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처해 있을 때 그를 건져 살릴 자는 오직 여호와이시다(18-19).
하나님은 피조물이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알고, 믿고,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찬송하는 것을 원하신다. 진심을 다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부르며 경배하는 것을 원하신다. 다름 아닌 피조물이 자신을 만든 주인인 조물주를 향해 마땅히 온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을 당연하다. 종이 주인을 알고, 자식이 부모를 아는 것과 같다.
가난한 이웃을 찾아갈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비교적 자유롭다. 하지만 예를 들어 이름만 말해도 다 알만한 재벌그룹 총수를 만나러 간다고 가정해 보라. 무엇을 들고 갈 수 있겠는가. 슈퍼에서 수박 한 덩어리를 가져갈까. 백화점에서 종합선물세트를 하나 들고 갈까. 쉽지 않은 일이다. 구색을 맞추려 해도 내 수준과 형편에서는 시늉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물며 재벌기업 대표에게 가는 길에도 그러하다면 하늘 아버지를 뵈올 때 창조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게 무엇이겠는가.
아마 지금 시인은 그러기 때문에 온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은 다 아신다. 그가 진심으로,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참 된 자세와 태도를 따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찬송하는가를!: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위하는 나라는 복이 있다. 그분께서 상속자로 삼으신 백성은 복이 있다.”(12, The Message) 하나님을 아는 자만이,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만이, 삶의 목적과 방향이 오직 하나님 한 분인 사람만이 그의 영혼 가장 깊은 것에서 울려나오는 맑은 가락에 담긴 찬송을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다. 내가 어떻게 사느냐가 내가 어떤 찬송을 제사로 드리는 자인가를 결정한다. 찬송은 단지 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