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483주일 | 왜 물고기 뱃속에 넣으셨을까?(욘2.1-10)

483주일 | 2.1-10

왜 물고기 뱃속에 넣으셨을까?

 

모두가 다 하나님께 순종한다. 바다와 폭풍(4,15), 선장과 무리(14,16), 제비뽑기(7), 그리고 큰 물고기(17)도 그랬다. 하지만 오직 선지자만이 작심하듯 점점 불순종의 깊이를 더해간다.

 

기도자(Prayer) 요나

요나는 선지자의 새로운 사명을 받는 자리에 서더니 곧바로 끝없이 추락한다. 그러다가 지금은 물고기 뱃속에, 막다른 지점에 서 있다(1.1 1.17 2.1).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힘과 지혜와 노력을 다 동원해서 하나님이 니느웨에 대하여 가지고 계신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죽음으로 항의한 사람이다. 감히 하나님이 틀렸다고 온 몸으로 저항하였다. 그런 그가 마침내 하나님께 항복한다.

물고기 뱃속에서, 환난과 고난과 좌절의 끝에서다.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은 축복 안에 있을 때는 감히 하나님을 버렸다(1.3). 고난의 폭풍 앞에서도, 그곳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도 깊은 영적(靈的)인 잠을 잤었다(1.5b). 그러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리스도인이라 당당하게 소개하는 파렴치할 정도였다(1.9).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하나님과 맞짱을 쓰듯 대결하기 위한 출사표를 던진다(1.10a). 그리고 선지자 포기선언서를 발표하기까지 하면서 하나님께 돌아가기는커녕 죽을 테니까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말하고서 끝내 선지자의 사명도, 하나님의 말씀도 다 자신의 몸과 함께 던저버린다(1.12,15). 이런 1장의 그가 어떻게 이렇게 2장에서는 달라질 수가 있다는 말인가.

고난의 자리를 기도의 무릎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117절 다음에 곧바로 2장을 읽으니까 쉬운 공식처럼 보이지만 요나에게는 이를 위해 3일이 필요했다. 그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망의 스올’(죽음, 음부, 2b)의 뱃속에서, 큰 물결의 바다 깊은 곳에서(3),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고 구덩이에 빠진(6) 바로 그곳에서 희망을 캐기 시작한다. 자신의 절망의 끝을 하나님의 희망의 시작으로 이어가기 시작한다. 이 복된 일이 기도로부터 꿈틀거리고 있음을 주목한다.

요나는 지금 몸뚱이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뱃삯을 지불하고 남은 돈과, 다시스행 배표도, 약간의 필요한 것들이 든 짐 보따리도 다 자기 품을 떠나고 마치 탕자처럼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캄캄한 물고기 뱃속에 앉아있다. 바로 이때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고,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 있는 자리이다. 요나는 자기 자신에게 절망한다. 다 잃었고 모두가 다 자신의 품을 떠났다. 자신이 하나님을 버리고 그분의 품을 떠났듯이 말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이 하나님은 이미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면목 없는 자신을 만나주시는 것이다. 그는 이제야 비로소 자신이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8a)라는 사실을 그리고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8b)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물고기 뱃속에서 말이다.

인생은 이렇듯 고통과 눈물의 골짜기를 통과해 갈 때, 바로 거기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때로 성공하고, 은혜를 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소유하게 될 때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주께로 돌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 반대의 모습에 처해 있을 때에, 오직 주님 밖에는 소망이 없을 때, 바로 그곳에서 주님을 부르며 통곡한다. 하나님은 실패와 좌절에서도 여전히 일하신다. 그리고 고통의 자리에서 요나와 그의 후예들인 요 나!’를 또한 부르신다. 이럴 때는 자존심 부릴 때가 아니다.

 

얍복 나루터의 야곱

하나님이 깊은 바다 속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를 기다리고 계시듯 얍복 나루에서 야곱을 기다리고 계신다. 그는 자신의 희망이 하나님께 있음을, 날이 밝으면 모든 것이 끝일 수 밖에 없는 바로 그 캄캄하고 공포스러운 밤에 깨닫고 마침내 하나님을 붙든다. 그는 자신을 포기한다. ‘속이고 빼앗는 자라는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이스라엘이 되는 키(key)를 쥐고 계신 하나님만이 희망임을, 하나님만이 얍복 나루 이후를 복되게 하시는 분이심을 고백하고 깨닫는다. 그리고 통곡하며 그에게 간구한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32.26b, 12.3-4)

지금은 이처럼 부르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다. 마침내 요나는 하나님께 항복한다. 주께 부르짖고 있고(2), 자신의 고난은 심은대로 거두는 것이지만(3), 그러나 악()을 선()으로 바꾸신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6b)다는 사실을 시인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바르게 살겠다고 하나님께 맹세한다(9). 그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초라하디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다. 이것이 보이지 않았을 때는 얼마나 당당하고 교만했었던가. 하나님의 은혜는 내가 누구인가를 보고 아는 것으로 측정된다.

비록 1장의 처지에 있을 때에 기도하지 않았다고 해서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 2장의 형편에서 기도하는 자로 회복되고, 자신을 처 복종시키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맛을 누리고, 하나님과 일대일의 만남을 겸손으로 무릎 꿇고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희망이다. 문제는 2장에서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2장의 사람으로 하루 아침에 달라질 수는 없더라도 지금 나의 형편과 처지가 2장의 요나처럼 일어나야 할 때라는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느끼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요나는 이러한 영적인 통찰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고 있다.

 

물고기 뱃속까지 추락해 있어도 다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스올의 뱃속 구덩이에까지 몰락했을지라도, 탕자처럼 돼지 우리에서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울지라도, 바울처럼 그리스도를 핍박하며 다메섹으로 가는 길목일지라도 하나님이 찾아오사 만나주시는 사람,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사람, 다시 돌아갈 곳에 있는 사람, 다시 부를 하나님 아버지가 있는 사람, 그러니까 탕자와 같은 사람은 아직 희망이 있다. 요나의 희망은 그의 끝이 하나님의 부재(不在)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하심이라는 은혜의 처소였다는데 있다. 하지만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다: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그 손 못자국 만져라!”(찬송가 4561)

그러므로 인간의 최대 교만은 하나님이 물고기 뱃속까지 당신의 보좌를 낮추셔서 요 나!’와 같은 나와 눈높이를 맞추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1장의 요나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그걸 보지 못하면 인생은 비록 1장의 요나처럼 하나님 안에 있을지라도, 그는 참 평안과 안식을 누리며 사는 특권과 축복 안에 거할 수 없다. 항상 인생은 폭풍행전이고, 세상(사탄)은 그러고도 그리스도인이라 말 할 수 있느냐 비아냥거리고, 그런 나 하나 때문에 내 옆에 있는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마치 요나의 배에 승선한 자들처럼 고난과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되고, 그런 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재산의 손해까지 보게 되고(1:5a), 그런 나 때문에 물고기까지 3일이나 생활의 리듬을 잃게 된다.

나 하나 정신차리면 가정이 행복해 진다. 나 하나 바른 신앙에 서면 교회가 평안 가운데 든든히 서 간다. 문제는 나다. ‘요 나!’. 요나 한 사람이 바르게 서니까 한 도시(민족)가 복을 받지 않는가. 하나님의 관심은 나 한 사람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우리를 또한 물고기 뱃속에 넣으시곤 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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