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새벽 | 대하28.16-27
아하스: ‘북왕국변주곡’인가.
아하스(28.1-27)
북왕국바라기(1-15): 하나님을 버리다.
앗수르(16-21): 하나님도 버리다.
우상숭배(22-27)
아하스가 다스리는 남왕국 유다는 북왕국 이스라엘처럼 되어버렸다(1-4). 이어지는 하나님의 심판과 이를 어찌해 보려는 아하스의 불신앙행진곡이 언제나 엇박자다. 그러니 이에 춤을 추는 유다의 몰골이 꼴사납기 그지 없다.
급기야 남왕국 유다는 북왕국 이스라엘처럼 되어버렸다(1-4). 다시 유다는 북왕국 멜로디를 돌림노래처럼 부르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람과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다(5-15). 왜 그런가: “이는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6a)
북왕국이 오리려 유다 같다. 이는 아하스가 앗수르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하스는 에돔과 블레셋의 침입을 막기 위해 앗수르의 도움을 청한다(16). 하지만 파병은 하였으나 오히려 조롱을 받았고(20-21), 이에 오히려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22) 하나님을 떠난다: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이르되 아람 왕들의 신들이 그들을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23) 그는 더 하나님을 멀리 떠난다. 다메섹 신들을 섬기고, 성전 기구들을 파괴하고, 성전문을 닫고, 산당을 세워 다른 신들에게 분향한다(24-25). 참으로 패역한 왕이 아닐 수 없다.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22)
곤고할 때에 더욱 하나님을 의지해도 될까 말까 아니겠는가. 그런데 더욱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난다. 이러고도 다윗의 후손이자 유다왕조(다윗왕조)의 후예라 할 수 있겠는가. 유다는 이렇듯 완전히 하나님을 떠나 ‘북왕국바라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때에 유다에는 선지자도 없는 것일까. 오뎃이라는 북왕국 선지자의 메시지와 이 메시지를 순종해 내는 북왕국의 백성들의 모습이 참 어색하지만, 이것이 북왕국이다(9-15). 그러니 유다는 더 처참하고 참담하게 무너진 비참하고 비통한 모습이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이 세월이 무려 16년이다(1). 그럼에도 하나님은 20만명이라는 유다 포로를 다시 고향 예루살렘으로 되돌리신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이 어느 왕보다 더 하나님을 떠난 죄악의 유다를 가득 덮으신다. 그럼에도 아하스는 더 멀리멀리 하나님을 떠난다. 이번에는 앗수르를 의지한다(16). 하지만 도리어 앗수르의 공격을 받을 뿐이다. 이 얼마나 기막힌 역설이란 말인가.
정말 기절할만큼 놀랍고, 그래서 놀람을 넘어 감동의 신음소리를 낼 수 밖에 없는 일이 일어난다. 이 아하스에게서 히스기야가 이어지고 있음이다(27). 하나님은 다윗언약과 이어 따른 다윗왕조(유다왕조)의 등불을 끄지 않으신다. 죄악의 어둠이 가장 깊을 때 사랑과 은혜의 밝은 빛을 비추신다. 전적이고 ‘거부할 수 없는 은혜’(Irresistible GRACE)가 아니고 무엇이랴! 아하스는 하나님 밖 가장 저 끝으로 죄행의 길을 떠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끝에서 은혜로 그의 죄와 허물을 덮으신다. 이 으혜 때문에 오늘 내가 있는 것 아닌가. 갚을 길 없는 이 은혜를 아는 것만으로도 이미 하나님의 사랑은 내 안에 시작되고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찬미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