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514새벽 | 히스기야[2a]: 준비 - 유월절을 회복하다(대하30.1-12).

514새벽 | 대하30.1-12

히스기야[2a]: 준비 - 유월절을 회복하다.

 

히스기야 왕 하나 바뀐 게 유다다. 그런데 지난 아하스의 16년과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성전을 회복하더니(29), 이제 유월절을 회복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유월절을 준비하다(1-12).

히스가야는 유다 방백들과 온 회중으로 더불어 유월절을 지키기로 의논하였고(1-2), 모두가 이 일을 좋게 여기고”(4), 이에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두루 다니며”(6a) 전했다. 이를 위해 행한 히스기야의 소위 국정연설’(기자회견)은 한 편의 설교다(6-9). 마치 왕이 아닌 제사장 같은 분위기다, 이로 보건데 히스기야가 얼마나 율법은 물론 다윗언약(삼하 7)과 성전언약(대하 6-7)에 대해 정통하고 있었는지, 동시에 이것이 그의 입술만이 아닌 그의 심령과 마음에 불타오르는 하나님을 향한 청지기적 소명에 깊이 헌신되어 있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한편 북왕국은 이미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다. 나라의 흥망성쇠는 하나님께 범죄함에 있으니(7), 그러므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만이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벗어나게 될 것을 고백한다(9). 하지만 북이스라엘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10-11): “조롱하며 비웃었더라.”(10b) 그러나(11) 모두가 다 복음을 거절한 것은 아니다: “몇 사람이 스스로 겸손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이르렀고”(11)

이는 마치 씨 뿌리는 예수님의 비유와 같다(8.4-15). 모든 마음밭(4 종류)이 다 뿌려진 씨앗이 열매를 맺은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중요한 것은 결실을 방해한 여러 요인들이다. 그렇다면 씨앗(말씀, 8.11)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받는 인간 마음의 밭이 문제다. 결실을 방해한 것은 마귀, 시련,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이다(8.12,13,14). 북왕국은 이미 나라가 결실로부터 멀어졌음에도 저들은 완악한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고, 결국 길가와 바위와 가시떨기와 같은 악한 마음을 회개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유다는 북왕국 이스라엘과 달랐다(12): “하나님의 손이 또한 유다 사람들을 감동하사 그들에게 왕과 방백들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전한 명령을 한 마음으로 준행하게 하셨더라.” 그렇다. 이들은 앞서 씨 뿌리는 비유에서 결실한 좋은 땅으로 히스기야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한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8.15)

 

유월절이 기록한 규례대로 오랫동안 지키지 못하”(5b)고 있었다. 이에 히스기야는 의논’(2)하자 왕과 온 회중이 이 일을 좋게 여기고”(4), 그래서 몇 가지 이유들 때문에 한 달 뒤인 214일에 유월절을 온 이스라엘과 유다가 다같이 지키게 된다(1,3). 어찌보면 히스기야가 이번에는 율법이 정한 규례를 어긴 것처럼 보인다. 모세의 율법은 유월절을 114일에 지키라고 하는데 그럼에도 히스기야가 한 달 뒤로 미룬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히스기야는 모두와 의논하고 마음을 모아 형식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이것을 내용 안에 진심으로 담아낸다. 이는 예수께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다는 말씀을 기억하게 한다(2.27).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 하신 것처럼 역대기의 유월절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흠향하신다.

유월절은 하나님께는 구원을 이루신 은혜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성도들에게는 이를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기쁨과 감사를 예배의 영광에 담아내는 살아있는 절기다. 이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다. 예배는 성도들을 치료하고 회복케 하는 은혜의 창고다. 역시 이 일은 한 사람 히스기야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 있을 때 일어난다. 사실 유다는 왕 하나 바뀐 것 아닌가. 그런데 이 하나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고 유다를 치료하고 고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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