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684새벽 | 복음은 하나다(갈1.1-10).

684새벽 | 1.1-10

복음은 하나다.

 

바울은 최소한 사도행전 8장까지는 사도가 아니었다. 그는 스데반의 죽임당함을 마땅히 여기는 핍박자였다(8.1). 때문에 그에게 갈리디아교회가 사도직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인사와 찬양(1-5)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이 사람들’(초기 기독교 공동체)이나 사람’(바나바)을 통해서가 아닌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분명하게 고백한다(1, 11.25-26 참조). 이 말에는 자신의 사도권에 대해 더 이상 시시비비(是是非非)를 한다는 건 하나님(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사도권에 대한 불신이라는 점을 말하려는 것 같다.

 

바울복음1(6-10): 갈라디아교회 vs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전하는 것과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중 하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이다. “우리가 전에”(과거, 9a)도 말했던, 그리고 지금 다시 말하”(현재, 9a)는 바로 갈라디아교회가 받은 것(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전하는 어떤 사람들은 갈라디아교회와 바울 모두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들이며, 동시에 저희는 미래에도 저주를 받을”(8b) 것이다. 놀라운 것은 우리’(바울 공동체)를 통해 받은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6a)와 아무런 상관이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재(9b)와 미래(8b)에 저주의 대상일 뿐이다.

갈라디아교회는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다른 복음을 받아 이를 쫓음으로써 저주 아래로 추락할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르신 이로 말미암아 바울을 통해 주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시 회복함으로써 저주의 고리를 끊을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말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참 비장하다: “그러나 우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8) 이 저주 선언은 저 먼 미래(8)의 메시지만이 아닌 바로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는 현재(9)에도 유효한 선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바울은 지금 갈라디아교회에 하고 있는 일들이(전에 복음을 전했고, 지금은 편지를 쓰고 있음), 그리고 자신들이 기쁘게 하는 대상이 사람인지 하나님인지를 분명히 드러낸다(10). 그렇다면 이제부터 써 내려가는 메시지의 초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쪽에 집중할 것임을, 왜냐하면 자신은 사람에게서”(“사람으로 말미암아”, 1a) 세움을 입은 자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1) 자이기에, ‘그리스도의 종’(10b)이기에 그렇다.

 

    “내가 아직도 사람의 환심을 사려 하고 있다면 .”(10b, 표준새번역)

 

바울은 참으로 아픈 과거를 기억창고에서 끌어낸다. 그것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기 이전, 즉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기 이전에 한때 자신이 지금 갈라디아교회를 복음에서 속히 떠나게 하는 어떤 사람들처럼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한 부끄러운 자였음을 고백한다(10b):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13) 이것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리스도의 종이 아닌 다른 복음에 기초한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점을, 놀랍게도 바울은 자신의 옛사람을 예(case)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가짜와 진짜를 구분(구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가짜를 도려내는 일이다. 지금 갈라디아교회는 이 어렵고도 힘든 영적(靈的) 수술을 시작하려 한다. 이는 다른 복음과 함께 교회를 저주 아래로 떨어뜨리려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이라는 가라지를 제거하는 일이다. 이를 위한다면 더 이상 사람을 기쁘게 하는 꼭두각시놀이를 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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